Shoes to Ship


Gerhard Charles Rump | Art Critic


In art, all experience is formal in the sense that everything is bound to form. Experiences of colour, for instance, are bound to the shapes which either contain the colours or are constituted by colour. This can be a boundless form like in Barnett Newman, or a defined one like in Serge Poliakoff. Dont we know that in art even attitudes become form? One could turn the argument around, but one would still pay with the same coin. Moreover, we know that if the experience of the world, be it the inner or the outer one, be it the real one or the imagined one, were not already form in some sense, it would never be able to become form. Forms, call them shapes if you wish, correspond to the Gestalt principles of our system

of perception, they are invocative and they follow a grammar of their own, a grammar the artist will have to use, before he can set out to change it, at least in the way of adding some variations.


This is what Heryun Kim has done, and very convincingly so, in her Shoes for Art series of

paintings. She has both followed her principles she applied in earlier works and developed them further at the same time. She explores the visible world, but as she probes deeper than just the thin layer of appearance, for her form as pictorial form is a constant struggle between the shape of objects, the figurations on the canvas and the non-shape qualities like colour and colour-space. To this we must add the invocation of symbolism. Heryun Kim makes clear, sometimes even bold decisions. Sometimes shapes, given in outlines, are deliberately blurred as to take the painting into a world parallel to the real  one, so that it can unfold its own laws, the laws of aesthetic experience. One could call them the laws of

pictorial form, too.


All this is relevant for the appreciation of the painting in her Shoes for Art series, although one has to keep in mind that she is not repetitive variation is the name of the game. There is a rather large painting in Prussian blue with white lines, which become changing light blue ones, as the white was applied on the wet blue and mixed with it. This changes the lines into quasi non-linear elements, as, despite the fact that they retain a linear quality, they also gain a painterly quality. The outline reminds us of a traditional Korean shoe. There is even a stretch of a lighter blue parallel to the upper outline indicating a hollow space. Figuratively speaking, you might slip into the shoe.


In this 2005 painting, Heryun Kim has transferred the pictorial strategies of her earlier work, notably of the 2000 series of still lives, which were comparatively small in size, to the large format. And it works, and very well one should add. In the small format still lives, Heryun Kim made all objects shine up as painted form, so that they had to borrow their solidity from an autonomously treated colour, but at the same time, they enjoyed their inner space and sported a discernible depth. The objects took to the front what was meant to be in the back, and they appeared to be pushing backwards what might have been the very front. And sometimes, within the confines of dark thick lines, painterly lines, not the graphic

artists ones, colour unfolded another story, which we also find acting against everyday experience, again reshuffling layers and levels, of both space and experience: Lines became paintings, Heryun Kim has concentrated on the lines, and they, corresponding to shapes in the shape-library of our minds, form the image of a shoe whilst staying unwilling to yield any of their autonomy.


Here, too, the object has some kind of solidity, but at the same time it seems to float freely in

a space which we have to imagine as being larger than the physical size of the canvas, as the shoe we see is only given as a fragment. And the background is potentially infinite, too. This, again, supports the autonomy of the aesthetic elements line and colour. But, there cannot be any doubt, both are form.


We borrow actively from the shape library in our minds when we see the paintings, also rather large in format, including a triptych, and even a polyptych 8 meters wide and 2.59 meters high, which show a pair of shoes, each shoe alongside the other but seen from an oblique angle, but this time not overwhelmingly large and not partly seen, but rather given in full and much smaller in relation to the size of the canvas. And we do the same when seeing those which show a single shoe, small, isolated, floating alone somewhere in the upper left quarter of the canvas. What we borrow is the image of a ship, a boat.


There are, of course formal and functional similarities between ships and shoes, especially Korean or Asian in general ones. They are so obvious we need not dwell on them here. But besides the fact that Heryun Kim has made a compelling image from them in the formal and painterly sense the paintings are, after all, full of aesthetic delicacies, appealing both to Western and Asian viewers she has also given so much more through the opening of a symbolic dimension. And this also is available to both the Western and the Asian viewer. Western art knows the image of the ship symbolizing the voyage of life, like, for instance, in Caspar David Friedrich. And in Greek mythology we find the boat of Charon the ferryman,

taking the deceased into Hades, the underworld, by crossing the river Styx. And we have all heard of crossing Jordan. While this is common currency in Western minds, the boat as the vehicle for the soul to reach infinity is also a symbolic image Asian viewers are familiar with.


Shoes are made for walking, and we all follow a walk of life. In reality, and metaphorically, too. And for all of us there will be a time to slip out of our shoes at the doorstep, and their form may remind the ones left behind where we will be then. May they then picture us on a boat on a river, and may the trees be tangerine under a marmalade sky. One thing is for sure: We shall not pay the ferryman until he has taken us to the other side. And art is what remains; it is greater than we are.


This is what these images speak of, softly, painterly, artfully. Like all great art.

-2005 exhibition catalogue of Museum Ephraim-Palais Berlin


신발에서 배로


김혜련 최근 회화 연작에 대한 비평


게하르트 차알스 룸프 박사 2005년 여름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형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예술에 있어서의 모든 경험은 형태적(formal)이다. 예를 들어 색채 경험을 말할 때에도 색채의 외곽을 설정하는 형태이든, 색채로 구성되어지는 형태이든 간에 이것은 어떤 모양들(shapes)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색채 경험은 바네트 뉴만(Barnett Newman) 작품에서처럼 경계 없는(boundless)" 형태가 되기도 하고 세르게 폴리아코프(Serge Poliakoff)에서처럼 한정된 형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예술에 있어서 심지어 어떤 태도(attitudes)조차 형태화한다는 것은 잘 알 지 않는가? ("When attitudes become form"). 이러한 논쟁을 우리는 살짝 비켜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러야 할 대가는 그대로이다. 내적인 것이든 외적인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 상상의 것이든 간에, 만약 세계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형태가 아니라면 이 경험은 결코 형태화 되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더구나 잘 알고 있다. 형태들(forms), 혹자는 이것을 모양들(shapes)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우리의 지각 시스템 중 게슈탈트(Gestalt)원칙에 상응하는 것이다. 연상 작용이 강한, 예술가가 약간의 변주를 통해 변형시키기 전에는 스스로 따를 수밖에 없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의 원칙 말이다.


이것이 바로 김혜련이,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그녀의 회화 연작 예술을 위한 신발에서 이루어놓은 일이다. 작가는 자신의 초기 작품에 적용시켰던 유효한 원칙들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작가는 시각적 세계를 탐구하고 있으나 보이는 외양의 얇은 표피가 아닌 심층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에게 있어 조형적 형태/조형 형태로서의 형태란 사물의 외양과, 캔버스 위의 형상과, 색채 또는 색채공간과 같은 비 형태적 측면의 지속적인 대결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 또한 상징주의의 비밀스런 주문이 추가된다. 작가는 선명하게, 때때로 매우 용감하게 결정적인 형상을 만들어 놓는다. 윤곽선을 통해 주어진 형상들은 조심스럽게 뭉개지기도 하는데 마치 회화가 실제의 세계와 평행한, 그 자신의 법칙, 미학적 경험의 법칙을 펼쳐 보이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듯, 그렇게 보인다. 우리는 이것들을 그림의(pictorial) 형태에 관한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 모든 것들은 작가의 회화 연작 예술을 위한 신발을 감상함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물론 반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주를 하고 있다. 다소 큰 크기(194 x 259 cm) 인 프러시안 블루에 흰 선이 그려져 있는 작품을 보면 마르지 않은 파란 부분에 흰 선이 섞여져 흰 선이 점차 하늘색으로 변해간다. 이런 기법은 선적인 성질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회화적 성질을 갖는 요소로 선들을 변화시켜 선들을 소위 선이 아닌 (non-linear)요소로 전환시키고 있다. 윤곽선들은 이 때 한국의 전통 신발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하지만 그림에는 비어있는 공간을 암시하는 윤곽선 바로 아래 평행으로 약간 밝은 파란색 부분이 등장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이 공간 속으로 살짝 미끄러져 들어갈 것 같다.


2005년 작인 이 신발 그림들에서 작가는 이전 작품, 특히 2000년도 정물화 연작에서 발전시켰던 조형적 전략을 대형 화면으로 전이시켰다. 그리고 그 성과는 매우 좋다. 작은 크기의 정물화 연작에서는 소재들이 그려진 형태로 돌출되어 보였다. 자유롭게 선택되어진 색채로부터 대상의 견고함이 생겨났고 동시에 캔버스의 내부 공간은 구획되어졌고 눈에 띄는 깊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뒤에 있는 것 같은 사물이 앞으로 등장하고 앞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사물들이 뒤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래픽적인 선이 아닌, 회화적으로 그려진, 두텁고 진한 윤곽선 안으로 색채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공간이나 경험, 이 모두의 상투적인 영역과 차원을 거스르는, 일상적 경험을 거스르는 작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선들이 회화가 되고, 따라서 공간, 볼륨, 형태를 재 정의하게 만든다. 김혜련은 새 작품들에서 선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선들은 우리 마음의 형태 저장고의 내용에 상응하여 신발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선들의 자율성을 전혀 잃지 않고 있다.


새 작품에서도 역시 사물들은 일종의 견고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캔버스의 물리적 크기보다 더 큰 공간으로 여겨지는, 어떤 공간 속에 자유로이 떠다니고 있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가 화면에서 보고 있는 신발은 단지 파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경은 무한한 것으로 확장된다. 이것은 다시금 선과 색이라는 미학적 요소의 자율성을 지탱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확실히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삼면화를 포함해서 8미터 폭에 2.59 미터 높이의 다폭화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크기의 유화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마음의 형태 저장고에서는 활발한 활동이 일어난다. 삼면화에서는 신발 한 켤레가, 각각 나란히, 그러나 약간의 사선 각도로 그려져 있다. 이제 압도적으로 큰 크기도 아니며 파편적으로 보이는 신발 형태도 아니다. 적당하지만 캔버스 크기에 비하면 오히려 어느 정도 작아 보이는 신발이다. 이것은 캔버스 위 약간 왼쪽에 있는, 한 짝의, 작은, 고립된, 외롭게 떠다니는 신발들을 그린 다폭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우리가 읽어내는 이미지는 바로 배, 선박 그것이다.


배와 신발 사이에는 형태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물론 유사성이 있다, 특히 한국-또는 일반적으로 아시아-의 배와 신발에서는. 더구나 이 작품에서 그 유사성은 너무나 명확하여 더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런 유사성을 매개로 형태적인 면에서나 회화적인 의미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림들을 만들어냈다는 점 외에도 -무엇보다도 이 그림들은 미학적인 섬세함으로 가득 차 있어 서구인에게나 동양인에게나 모두에게 매력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데- 김혜련의 작품은 또한 상징적 차원의 문을 열어 더 많은 내용들을 선사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상징적 차원의 내용은 또한 서구인에게나 동양인에게나 모두 유효하다. 서양 미술사에서 배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작품의 예처럼 인생의 항해를 상징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는 죽은 자가 샤론이라는 사공의 배에 실려 스틱스(Styx)강을 건너 저승세계인 헤디스(Hades)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우리는 요르단 강을 건넌다. 라는 표현이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영혼을 영원한 세계로 인도해주는 수단으로서의 배, 이러한 상징체계는 동양인에게 친숙한 이미지이겠지만 서구인의 의식에도 이에 상응하는 호소력이 있다.


신은 걷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실제로도, 또한 은유적으로도 역시.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신발을 벗고 인생 너머 마지막 여정을 떠나야 할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문 앞에 신발을 벗어놓아야 하며, 남겨진 신발의 모습은 우리가 이제 처하게 될 마지막 여행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과일 잼 같은 하늘 아래 오렌지 나무 옆으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을 것을 생각해 보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강을 다 건너기 전에는 사공에게 우리가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남을 것이다. 그것도 우리 자신보다 더욱 위대한 방식으로.


이런 것들에 대해 이 그림들은, 조용히, 회화적으로, 예술적으로 말하고 있다. 모든 위대한 예술들이 그러했듯이.

-2005 베를린 에프라임 팔레 미술관 개인전 도록


게하르트 차알스 룸프 박사는 베를린 테우 예술학과 초빙교수이며 독일 디 벨트 지 예술부 편집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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