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상징성과 시적(詩的) 물성(物性)

 

__김 혜련의 개인전에 부쳐____

 

윤우학<미술평론가>

 

현대회화의 숙명적인 과제는 매체에 대한 자기인식으로서의 평면성, 역사적으로 오랜 교분을 나누어 왔던 대상에 대한 이미지, 한꺼번에 회화라는 이름아래 새롭게 공존시키는 일이다.

사실 평면성 대상의 이미지는 서로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관계로 서로를 한 곳에 존립시키고 공존시키는 일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며 이율배반이다. 평면으로서의 회화가 평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입체적인 대상의 이미지를 기피할 수밖에 없고 그 해결의 길은 추상적 이미지를 통한 탈 입체화의 길이다. 또 대상의 이미지를 살려 회화 특유의 인식론적인 매력을 살리는 길은 회화의 매체적 평면성을 파괴하여 입체화를 추구하는 곳에 있을 따름이다. 말하자면 평면의 추구 입체의 추구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방향을 한 곳에 모으고자 하는 난해한 과제가 현대회화에 주어졌다는 말이다.

 

실제로 근대회화의 역사는 이 양 방향의 심화에 존재의미의 핵심을 두고 있었다. 예컨대 르네상스 이래 줄기차게 달려왔던 근대의 길이 대상의 이미지를 평면위에 그럴듯하게 입체적으로 위장시키는 길이었고 사진이라는 이미지 포착의 기술이 돌발적으로 등장하기까지 위장의 극점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 그 한 편의 논리라면, 그러한 극점에서 회화의 존재가 대상의 수단으로 전락 될 수밖에 없다는 자각을 통해 스스로의 평면적인 독자성을 강조한 채 추상회화의 자율적 질서를 추구하여 갔던 길이 또 다른 한편의 대항논리였었다.따라서 이 두 가지 측면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오늘날 회화의 새로운 과제로서 부상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현대회화의 이른바 회화성의 회복이라는 관점과 궤도를 같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화가 김혜련의 작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눈 여겨 보아야 할 작업이다. 그의 작업이야말로 새로운 과제의 한 가운데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작업의 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회화의 오늘이 조금은 무기력하고 구심점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갈등과 문제의식을 잃은 채, 테크닉 위주의 전개를 보인다든지 아니면 소재주의적 요소로 기울어져 왔던데 그 원인이 있었다고 한다면 김혜련의 작업은 회화로서는 몹시 중요한 존재론의 맥락 속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모든 이미지들은 대상의 입체성을 강조하는 이미지도 아닐뿐더러 단순한 탈구상적 표현의 이미지도 아니다. 그의 이미지는 오히려 개념적 양상을 두르는 구상적 이미지로서 이미지 발신의 코드가 지극히 다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그것은 특히 이미지의 농축 과정 속에 회화의 평면성이 갖는 물리적인 이차원은 물론 시각적인 환영공간으로서의 삼차원을 극복한 채 독특한 조형공간에서 기묘하게 존립하는 이미지의 새로운 상황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때, 회화의 조형적 중심으로서의 색은 인식의 수단으로서가 아닌, 그렇다고 단순한 체험과 직관의 대상으로서 머물지도 않는, 일련의 중립적이고 융합적인 차원의 존재율을 보여 주는 그러한 것이다.

 

그의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존재는 재현적인 차원도 아닐뿐더러 물리적이고 육질적인 평면 오브제의 차원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색은 물감이라는 존재가 평면이라는 회화의 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부닥뜨리게 되는 이중적 질서,  으로서의 비물질적인 차원과, 물리적 시간의 중첩으로서 나타나는 두께라는 물질적 차원의 교차 속에서 숙명적으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갈등은 그의 회화를 새로운 해석의 차원으로 이끌어 보다 깊이 있고 의미 있는 그림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그것은 그의 그림이 색이자 동시에 물질이고 물질이자 동시에 색인, 기묘한 중립성 속에서 현대회화의 새로운 융합주의적 실마리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사물들의 이미지들은(나룻배를 비롯하여 책, 신발, 과일, 항아리 등) 특정한 대상의 이미지에 옭매이지 않고 오히려 보편적이고 나아가서는 개념적인 이미지를 체험케 하는 특성이 있다. 이를테면 그의 화면에서의 나룻배는 특정한 배의 재현도 아닐뿐더러 나룻배라는 이미지를 떠난 추상적 이미지도 아니다. 그것은 화면에서 새롭게 색과 더불어 탄생된 창조적 이미지이며 오히려 다양한 각도에서 이미지를 끌어 들일 수 있는 열려진 차원의 그림이다. 그 배는 인생의 항로를 건너는 배 일 수도 있고 고독하게 삶의 바다에서 고립되어 출렁이는 존재의 한 상징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훨씬 서술적이면서도 결코 재현적이지 않은, 그래서 더욱 물감의 물성을 살린, 기묘한 시적(詩的) 이미지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 이미지의 탄생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예민한(일상적인 관점에서는 지나치리만큼) 감성이 색의 형성층(발생론적인 층)에 깊이 있게 안착한 결과라 할 수 있고 그것은 특히 유화가 갖는 유화 특유의 무게감과 중층성을 제대로 살린 결과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물감이라는 존재가 전통적인 매체적 형식 속에서 어느 만큼까지 변신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뿐만 아니라 유화의 조형적 최대공약수를 가르쳐 주는 확인 시점으로서도 존재한다.

 

김혜련의 그림은 분명 배면 배, 책이면 책으로서 인식되지만 그것의 본래 형태와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 새롭게 쪼개어지고 휘날리는 작가의 육신과 영혼이 융합한 행위적 붓질 속에서 회화적 언어로 번역된 그림으로서, 보는 이에게 이미지 고유의 이미지를 전통적 회화 형식 속에서 새롭게 만나게끔 유도하고 조율하는 그림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은 다양한 것 속에서 통일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까닭에 화면에 밀도와 긴장도를 높여 작품의 내용이 극단적인 농축감과 더불어 시어화(詩語化)하게 한다. 말하자면 그냥 막 그린 그림이 사물의 서술성으로 시끄럽게 되는 것에 반해 오히려 조용하고 정숙한, 그래서 보다 시적인 응축된 화면을 생성시키는 특징이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몇 년 전 그의 작업을 평가하는 글에서 물감의 유목주의, 색과 물성의 기묘한 공존관계라 칭한 적이 있지만 지금도 이 평가는 그대로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더욱 이 평가가 차원을 높여 가는 과정에 작가가 서 있다고 하겠다. 사실 그가 그와 같은 지점에 이르기까지는 화면에 대한 막대한 연습량은 물론 작업행위에 고도의 숙련성과 감수성을 투입한 결과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가 일구어 온 작업의 세계가 결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님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숙련성과 고밀도의 세계가 지나치게 기술적으로만 강조되고 내적인 다양성과 그것을 안으로부터 묶는 중성적인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서술성을 잉태시켜 일련의 과부하 현상을 초래할 위험도 없지 않지만 역설적으로는 이러한 위험성의 내포야말로 그의 세계가 지니고 있는 숙명적인 긴장감은 물론 그의 회화가 지니는 존재적인 특징을 한편에서 잘 말해 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2009 마이클 슐츠 갤러리 서울 개인전 출판 작품집 "volcano" 서문


 

Advanced Symbolism and Poetic Materiality

 

 

Yoon, Woohak | Art Critic

 

 

The inevitable task of modern painting is to create a new coexistence, under the name of

painting, between two-dimensionality as self-awareness of the medium and the image of the subject, with which it has shared a long historical relationship.

 

Indeed, it is a kind of contradiction and incompatibility in itself that flatness and the

image of the subject bring each other into existence and coexistence in one place, in a relationship of conflicting positions. In order for the painting as a flat surface to ensure its flatness, it must avoid images of three-dimensional objects, and the method of resolving this is one of escaping threedimensionality through abstract images. And the only way to preserve the image of the subject and maintain the characteristic epistemological attraction of the painting medium is to destroy the  mediums flatness and pursue three-dimensionality. In a word, the intractable task placed before modern painting is to gather in one place the two incompatible courses of pursuing flatness and pursuing three-dimensionality.

 

The core of the meaning for being in the history of modern painting has actually been

in the deepening of these two courses. For example, one strand of logic has been the course of modernity traveled vigorously since the Renaissance, one of plausibly disguising images of subjects to simulate three-dimensionality on the surface of the canvas, reaching the extreme of disguise with the sudden emergence of photographic technology for capturing images. Another rival logic has recognized that at such an extreme of disguise, the existence of painting would inevitably decline into a mere instrument of the subject, and it has thus taken the route of pursuing an autonomous order of abstract painting, emphasizing the artists own two-dimensional originality.

 

The search for possibilities of coexistence between these two aspects has therefore arisen

as a new task for painting in recent years, and this also has elements that follow along the same track as perspective within modern art of the so-called restoration of picturality.

 

The works of the painter Heryun Kim must be observed carefully within this vein, as

they represent one course within the process of conflict and concern at the very center of this new task. Indeed, if one examines the causes behind the current state of modern art--slightly enervated and lacking a center--and attributes it to a development that has lost any sense of conflict or problematization and is centered on technique, or else to a bias toward elements intended to exploit certain subject matter, Kims work could be said to occupy a very important strand of ontology as painting.

 

In fact, the images that appear in her paintings are not all images that stress the threedimensionality of the subject, nor are they all images of simple post-representational expression. Instead, they are concrete images that encircle a conceptual aspect, and their codes for transmitting image have a highly multiplex aspect. In particular, within the process of enriching the image, a new situation is shown of images peculiarly existing within a distinctive figurative space, overcoming both the physical two-dimensionality of the painting surface and the three-dimensionality of the visual illusion space. And at this point, color as the visual essence of painting does not remain as either a means of awareness or a simple object of experience and intuition but is the kind of thing that shows the rhythm of existence in a series of neutral and blended dimensions.

 

This means that the presence of the images on her canvases represents neither a

representative dimension nor a dimension of physical and fleshy two-dimensional objets. Thus, the colors that appear in her paintings show a twofold order in which the presences of pigments clash inevitably within the conditions of the flat surface of the canvas--an image of predestined conflict within the interplay of the non-material dimension of color and the material dimension of the thickness that appears as the physical overlapping of time. And this conflict draws her paintings into a new level of analysis, transforming them into deeper and more meaningful works, since one could view this as the paintings tossing out a new fusionist thread in modern painting within the odd neutrality where color is matter and matter is color.

 

As a result, the images of various objects that appear on her canvas (including ferry boats,

fruit, shoes and urns) are characterized by the way that they do not get tied up in representation of certain objects but lead us instead to experience images that are not only universal but also conceptual. For example, the ferry boats on her canvas are not representations of specific boats, nor are they abstract images that depart from the image of a ferry boat. They are creative images born anew with color on the canvas, paintings of an open dimension capable of drawing the image inside from various angles. The boat could be a boat crossing the sea of life, or a symbol for a solitary being, isolated and undulating on the sea of life. This is the birth of a peculiar poetic image that is far more narrative and yet not at all representational, and thus it preserves the physicality of the pigments even more. And this birth of the poetic image could be seen as the result of the artists characteristically delicate and sharp (to an extent that could be called excessive from an everyday standpoint) sensibility arriving profoundly at a formative layer of color, which could itself be called the

result of properly capturing the characteristic weight and multi-layered quality of oil painting. Thus, Kims paintings exist not only as good examples of the extent to which color can metamorphose within the traditional format of the medium but also a perspective of confirmation, teaching us of the greatest common visual measure of oil painting.

 

Kims paintings are works in which a boat is clearly recognized as a boat, and fruit as

fruit, but they do not remain as their original forms and images, instead translated into a pictorial language within active brush strokes that blend together the artists body and soul, newly splintering and fluttering. The paintings thus guide and tune the viewer to meet once again with the images inherent image within the traditional format of painting. And because these paintings communicate unified images within diversity, they increase the density and tension on the canvas, creating a poetic language out of the paintings content with an extreme richness. In a word, while a poorly painted work becomes noisy with the narrative nature of the object, Kims works are characterized by the way in which they form canvases that are instead quiet and subdued, and thus more poetically condensed.

 

In a critique of Kims work a few years back, I used the terms nomadism of the pigment

and the peculiar coexistence of color and materiality, and these assessments remain valid even now. Actually, I would now say that the artist is standing in the midst of a process in which this assessment is raising its level even further. In fact, if one bears in mind that the artistic world claimed by Kim is the result of investing not only a tremendous amount of practice on the canvas but also a high level of skill and sensitivity in the act of creation leading up to such moments, one can see that this world is not at all something of a simple dimension.

 

Of course, there is indeed the danger that if this world of skill and density should become

emphasized simply in an excessively technical way, and the neutral balance binding it from inside should come crumbling down, it could paradoxically give rise to more narrativity and bring about a series of overload phenomena. But this presence of danger is also, paradoxically enough, an aspect that bespeaks the inherent tension possessed by her world and the existential characteristics possessed by her paintings.


-2009 in the Works "volcano" published for solo exhibition in Michael Schultz Galler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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