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한글

김혜련의 <그림을 쓰다 : 훈민정음>을 읽고

 

이동국/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문제제기

 

이번 전시 <그림을 쓰다 : 훈민정음>(이하 <그림쓰기>로 함)에서 선보인 김혜련의 신작 그림쓰기시리즈 작품은 일상에서 해독가능한 문자(文字)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익히 알아볼 수 있는 서구추상미술의 구조/얼개만으로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 구체적으로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나 로버트 마더웰과 같은 서구추상언어 잣대로도 잘 읽어낼 수 없다. 오히려 문자 아닌 문자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전부를 넘어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장(文章)을 주로 작품소재로 삼는 서예가들이 보면 글자가 아니라고 등을 돌리고 말 작품이다. ()나 문자와 담을 쌓고 살아온 서구추상에 익숙한 미술작가나 관객 역시 김혜련의<그림쓰기> 작품의 진의해독은 난해하다. 이유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뻔할 뻔자인 한글이라는 문자를 이렇게 문맥을 단절시켜 불통(不通)의 지경으로 해체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혜련의 <그림쓰기>작품 해독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작가에게 그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문제 삼는 김혜련의 <그림쓰기>에서 그림은 문자이전에 소리/말을 그린 것이다. 그것도 전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말이다. 눈에 보이는 점획(點劃)이전에 그 이면에 깔린 말이 김혜련의 그림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혜련이 문자를 다룬다는 것은 그 자체가 자동적으로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문제 삼는 것이 된다. 바른 글자 - 정문(正文)이 아니라 바른 소리, 정음(正音)’의 이름으로 문자가 창제되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 세종은 <<정음(正音)>>에서 천지지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자자연의 문자/그림이 있다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는 그림이면 그림이고, 쓰기면 쓰기이지 그림쓰기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그림그리기, 글씨쓰기는 들어봐도 그림쓰기는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생경하기 그지없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지루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초등학교 때의 그림일기의 경우, 그림과 글이 공책 한 장에, 그림과 문장이 상하로 나란히 구성됨을 안다. 하지만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이와도 다르다. 그렇다고 한국미술의 얼개/뼈대/구조인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내지는 서화동원(書畵同源)이라는 잣대를 직접적으로 들이대며 맞비교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김혜련의 그림쓰기에는 시()도 문자(文字)도 모두 해체되어 제시되기 때문에 , 더 근본적으로는 말 자체가 해체되어 있기 때문에 독해가 어렵다 못해 안 된다.

김혜련의 <그림쓰기>가 점() () ()을 골자로 하는 서구추상 잣대로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러기에는 너무 평면적(平面的)이고, 뻔하고 싱겁기 까지 하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굳이 말하면 동서미술의 응결체내지는 언어(言語)와 예술(藝術)의 합일체(合一體)로서 그림과 글씨가 대각으로 꼬인 서화미술일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그래서 1443년 조선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축으로 시공(時空)을 들배지기 한판으로 뒤집어 내고 있는 현장이 김혜련의 <그림쓰기>이다. 김혜련의 붓질은, 필획(筆劃) 스트록은 그야말로 바람난한글을 타고 역사 원점으로 미래로, 동으로 서로, 천지자연으로 우주로 종횡무진 내달리고 있다.

그간 한국 사람들은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정음(正音)을 말을 전달 기록하는 수단으로 579년 동안 부려먹었다. 2022년 지금, 정음(正音)의 텃밭인 한자(漢字)는 사실상 한글 전용 앞에서 사문자(死文字)가 되다시피 했다. 이대로 가면 한국에서 한자(漢字)의 죽음은 시간문제다. 한글은 1443년 이전과도 대화의 문을 닫았다. 천전리 암벽의 무수히 반복되고 중첩되는 ‘X’ ‘W’ 문양은 물론 마름모 · 동심원 · 파형 등의 곡직(曲直)의 추상필획문양은 물론 선사시대 토기와 동경(銅鏡), 가야토기 조형의 공통문양인 원네모꼴삼각형한글과 무관하다. 문명개화(文明開化)의 이름으로 서()와 미술의 신() () () () ()의 도()가 막히고 끊어지기 시작한지가 100년도 넘는다. ‘()는 미술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도 아니다라는 일제강점기 일본화된 서구미술잣대로 무자비하게 재단된 이래로 지금까지 한국의 서()는 미술과 점점 더 남남이 되어왔다. 오늘날 한국미술의 생명줄은 뉴욕과 파리에 직접적으로, 아니면 동경을 거쳐 간접적으로 서구에 파이프를 대고 살아 왔다.

예컨대 오늘날 세계미술시장에서 한국미술의 독자성을 각인시키고 있는 1970년대 단색화와 그 이후 설치 영상과 같은 실험미술에 대한 평가를 보자. ()라는 평가 잣대가 사실상 완전히 빠진 마당에서 그 뿌리나 정체성의 근본 잣대를 외부에서 구하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미술을 보는 근원적인 시각/방향/관점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예컨대 곽인식 예술에 대한 기존 평자들의 절름발이식 인식을 홍가이는 <모노하, 이우환, 평면화, 단색화를 통한 곽인식> 이라는 글(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2019 곽인식탄생 100주년 도록)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모노하 같은 일본형 유사 전위예술이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서구식 현대문명과 그에 결부된 현대예술의 현대성의 패러독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곽인식이 돌아간 고향으로, ‘예술의 본래모습으로 되돌아가, 법고창신의 길에서 말이다. 그런 본래의 예술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을 곽인식은 이미 1970년대 말에 제시하였지만 한국의 평면화 작가 대부분은 허무주의적인 길을 걸었고, 또 다른 소수는 곽인식 형()의 평면화를 지속했다. 그런대 이 두 가지 유형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한국형 추상평면화로 알려진 미술을 어느 날 갑자기 단색화로 이름을 바꿔 한국의 자생미술사조라고 선전하고 있다. . . . . 모노하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집착 때문에 곽인식의 좀 더 중요한 포스트 모노하의 예술가적 성취가 가려져 아쉽다. . . . 즉 동양수묵의 재해석이자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홍가이는 곽인식의 예술을 모노하라는 외눈박이로 집착한 나머지 그 본질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모노하 같은 일본형 유사 전위예술이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단색화와 같은 서구 현대예술의 현대성의 패러독스의 산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곽인식이 돌아간 예술의 원적으로서 포스트 모노하’, 즉 예술의 본래모습으로 되돌아가 찾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양수묵의 재해석이자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는 것이 홍가이의 생각이다. 곽인식 스스로도 <<6월의 바람>> 37(1980.6)에 소개된 <표기(表記). 그 사람만의 행위로>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지필묵(紙筆墨)은 저에게 동양이 가지는 표현력과 신체(身體)의 리듬을 다시 발견 할 수 있게끔 해 주었습니다. 저의 표기(表記)’ 행위와 글자를 쓰는 것은 겉으로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제 자신의 신체, 정신의 리듬, 호흡을 향한 합체의 결정체(結晶體)라는 것에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것에 의해 제 자신이 자연(自然)임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희열입니다.”

 

요컨대 한국미술의 급선무는 단색화의 성과를 이을 화가를 발굴하는 것 이전에 단색화와 설치 영상과 같은 실험미술을 재정의 하는 것이고, 이들을 공통으로 관통하는 내재적(內在的)인 미학(美學) 잣대를 먼저 서()에서 통찰하고 회복해내는 일이다.

 


소리의 해체와 재구성

 

먼저 김혜련의 다음 작품<정음 20>를 보자.

2021 한국거래소-2.jpg

<정음 20>, 150x150cm, 모직에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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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正音)>으로 해독해 보면 두 개의 하늘 아래 땅, 또 하늘 하나 그리고 땅이다. 정음(正音)은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이 둥글고, 땅이 평평하고, 사람이 서있는 모양을 극도의 추상으로 모음을 만들었다. 나머지 13점의 시리즈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조는 마찬가지다. ━ ┃ 에다 ● ■ ▲ 과 같은 기하추상도형의 자유자재의 구성이다.

 

이에 대해 <<정음(正音)>>에서는 모음의 첫소리인 에 대해 혀를 오므려서 소리가 깊으니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리는 것과 같다. 둥근 모양은 하늘을 본뜬 것이다. (舌縮而聲深 天開於子也 形之圓 象乎天也)”고 통찰해내고 있다. 계속해서 ’ ‘를 보자.

 

“ ‘ 는 혀를 조금 오므려서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으니 땅이 축시(丑時)에 열리는 것과 같다. 평평한 모양은 땅을 본떴다. ‘ 는 혀를 오므리지 않아 소리가 얕으니, 사람이 인시(寅時)에 생긴 것과 같다. 일어선 모양 은 사람을 본뜬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天地人)에서 모양을 취했으니, 삼재(三才)의 이치를 갖춘 것이다. 그러므로 삼재가 만물의 우선이며 하늘이 삼재의 시작이니, ━ ┃세 글자가 여덟 소리의 머리이고 또한 가 세 글자( ━ ┃) 중 으뜸이다. (舌小縮而聲不深不淺 地闢於丑也 形之平 象乎地也, 舌不縮而聲淺 人生於寅也 形之立 象乎人也), 取象於天地人 而三才之道備矣 然三才為萬物之先 而天又為三才之始 猶 ━ ┃三字為八聲之首 而 又為三字之冠也.)“고 간파해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혜련의 앞서본 작품<정음 20>를 다시 보면 두 개의 하늘 아래 땅, 또 하늘 하나, 그리고 땅이다. 두 개의 우주가 포개져 있다. ()과 획면(劃面)4개의 층위(層位)를 이루면 쌓아져 있다. 그런대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초성(初聲)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음은 소리틀, 즉 아(,어금니] (,) (,입술) (,이빨) (,목구멍)의 형태를 극도로 추상화하여 자음(子音)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본디 정음(正音)에서 초성(初聲)의 경우 기본자 5개는 상형(象形)원리에 따라 ,,,,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소리의 세기가 더해진 가획자 9, 이체자 3개를 만들었다. 중성(中聲) 역시 11()는 상형원리와 합성원리로 만들었다. 이 중에서 이야 말로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형태 舌根閉喉之形을 그린 추상이자 자의 초발성(初發聲)이 내장된 소리로서 시각과 청각, 언어와 예술의 일체지점이다. 정음(正音)의 척도로 보면 소리와 문양이 그야말로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 소리의 질서를 시각화한 것이 추상문양임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하지만 음양의 조화가 소리와 문자세계인데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인간의 소리로 독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김혜련의 이 작품의 읽기를 시도해 보자. ‘’ ‘도 아니다. ‘으으’ ‘도 아니다. 아마 짐작컨대 45억 살의 지구, 아니면 138억 살의 우주 탄생의 옹알이 내지는 신음소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과 땅이라는 그림만이 소리로 쓰여 져있다. 당연히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정음(正音)을 완전히 음소(音素)단위로 해체하여 그림쓰기에서는 작가의 생각대로 언어의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적으로 정음이라는 문자구조가 소리의 최소단위인 음소(音素)로 나누어지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림쓰기에서 정음(正音)위의 정음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김혜련의 잎서 본 작품<정음 20>의 구조를 보자. 두 개의 우주가 포개져 있다. ()과 획면(劃面)4개의 층위(層位)를 이루면서 쌓아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대로 나머지 13점의 시리즈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독된다. 재론하지만 ━ ┃ 에다 ● ■ ▲ 과 같은 기하추상도형을 필획(筆劃)/스트록의 신()이 들어 마음대로 가지고 논다. 정음(正音)은 한국말은 물론 천지자연의 소리까지 눈에 보이게/해독이 가능하도록 정사각형 안에 용음합자(用音合字)원리에 따라 구조화/건축화/구축화 시켜냈다는 점에서는 정음(正音)은 표음문자다. 물론 문자이전에 우리말을 세종이 초성(初聲) 중성(中聲) 종성(終聲)이라는 음소(音素)단위로 분해하고, 자음과 모음을 1:1로 대입하여 초성[자음] + 중성[모음] + 종성[자음]’으로 음절화시켜 내지 못하였다면 오늘날 한글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다시 <<정음(正音)>>에서 들어보자.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에도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사람이 깨닫지 못할 뿐이다. 지금 정음(正音)을 만든 것은 애초에 지혜를 짜내어 억지로 구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소리의 원리에 따라 이치를 다했을 뿐이다. 故人之聲音 皆有陰陽之理 顧人不察耳.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사람소리에 내장된 음양이치를 통찰한 그대로 이다. 정음/한글은 애초부터 청각언어와 시각언어가 공존하는, 상형(象形)을 베이스로 한 표의문자(表意文字)이자 표음문자(表音文字)로서 성격을 기반으로 탄생하였다. 다시 말하면 표의(表意)와 표음(表音)을 넘어선 제3의 문자가 한글인 셈이다. 1443년 정음(正音)의 탄생지점 부터 한글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와 인간의 몸이 음양(陰陽)으로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 그림이자 글자이고, 소리이자 말이었다. 요컨대 문자영상시대 예술의 화두인 언어와 예술의 일체가 이미 579년 전에 실현된 것이 한글이다.

 

물질(物質)은 물체 - 분자 원자 원자핵과 전자로 나누어진다. 소리도 문장과 단어 음절 음소 점과 획으로 확산과 축소작용을 하면서 구상으로 추상으로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런대 이 세상 모든 많은 문자 중 이렇게 소리와 말과 같은 청각언어와 그림과 문자 같은 시각언어를 4중첩을 하나로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언어는 정음(正音)이다. 579년 전에 이미 정음을 만들 때부터 소리의 이러한 물리적 속성을 천지자연의 도()로 직관하여 문자로 현현해낸 사람이 바로 세종이라는 인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조선의 네 번째 왕이기 이전에 인류문명사의 패러다임을 정음(正音) 창제로 뒤바꾼 인물로 자리매김 된다. 20세기 서구 언어학자들이 발견해낸 문자의 음소성격을 15세기 중반에 중국어와 다른 우리말을 분해가능한대로 분해하여 소리를 음소단위로 나누어 눈에 보이게 한 것이다. 청각언어의 시각화다. 이런 맥락에서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세종이 정음(正音)에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표현해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 그대로를 실천해내고 있는 것이다.

 

원자와 우주

 

우리는 평소 시각언어와 청각언어를 별개로 취급한다. 소리는 소리이고,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리와 그림은 서로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정음(正音)은 이런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천지자연의 소리/말에는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양/문자가 있다.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정()을 통하여서, 삼재(三才)의 도()를 실어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요컨대 <<정음(正音)>>은 소리와 문()을 우주적 차원에서 통찰해내고 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문양/글자에는 필연적으로 소리/문자가 내장되어있다는 말과 같다.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문자이전에, 문자의 이면인 소리/말을 정음(正音)을 지렛대 삼아 그려낸것이 아니라 쓰 낸것이다. 정음원리로 소리의 기록수단으로 전락한 한글을 전복해내면서 정음본래의 우주의 소리세계로 나아간다. 이런 맥락에서 김혜련의 <그림쓰기>에서 새롭게 제시된 일련의 작품들은 제일먼저 소리를 문제 삼고 있다.

다시 김혜련의 앞서본 작품 <정음 20>를 분석해보자. 전적으로 모음만을 가지고 소리라는 그림을 쓰고 있다. 으 으 , , , 흥 도 아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표기는 현실적 한자음(漢字音)과 달리 받침이 없거나 초성(初聲)에 음가(音價)가 없는 ''이 있다면 여린 히읗을 쓰거나 형식 종성을 사용했다. 하지만 김혜련의 <정음 20>는 아예 자음(子音)자체가 없다. 자음과 모음의 합용원리가 깨지고 있다. 초성의 는 모음이다. (아래아), (여린히읗), (반치음), (옛이응)과 같은 소실문자도 아니다. 자음의 각자병서나 합용병서도 아니다. 그래서 소리는 소리이되 정상적인 인간의 소리가 아닌 것으로 읽힌다. <정음 13, 정음 20>는 물론 <정음 24>와 같은 작품에서 확인되듯이 하늘과 땅만 있고 사람이 없는, 그래서 태초의 우주의 탄생지점의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김혜련의 <그림쓰기>한글을 말이라는 의미를 전달/기록하는 수단/도구로서 문자(文字)에만 국한시켜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이와는 정반대로 소리의 원점에서 한글의 해방을 획책하고 있다. ‘바람난 한글이 김혜련의 그림쓰기이다. 그래서 말이라는 언어라는 맥락에서는 이번 전시작품이 온전하게 해독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사실상 거의 구음(口吟)과 같은 소리의 원점에서 놀고 있다. 마치 태초의 옹알이나 웅성그림이고, 염불(念佛)이고 묵언 수행이다. 분명히 소리가 아니라 말이고 문자이지만, 의미를 해독할 수 없는 사람입장에서 알록달록한 색상의 글자문양의 띠일 뿐이다. 그래서 언어와 예술이 일체가 된 이라는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만이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그 전모가 가늠된다. 일종의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지점에서 터지는 새로운 언어이다. 노래가사, 즉 말/소리/텍스트에 내장된 의미의 사슬/고리/줄 마저 끊어진 지점에서 들리는 소리다. 그래서 다시 천진(天眞)이고 난만(爛漫)을 넘은 소리 없는 소리를 불러낸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김혜련의 <그림쓰기> 의 대부분의 작품이 자음이 없는 모음,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이 없는 하늘과 땅만이 쓰여 지고 있음이 주목된다. 예컨대 <그림쓰기>시리즈 중 작품 <정음 13, 20, 25, 26>은 물론 <정음 24>의 경우가 그러하다

13.jpg      25.jpg      26.jpg      24.jpg

<정음 13>                                   <정음 25>                                    <정음 26>                                  <정음 24>


자음(子音)이 없는, 그래서 정음(正音)이 아니라 괴음(怪音)으로 까지 들린다. 좀 더 우리시대 지구내지는 인류의 실존에 귀를 기울여 보면 인간의 소리라기보다 기후변화와 팬데믹시대 한가운데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신음소리내지는 우주의 옹아리로 들리기도 한다. <정음 24> 작품을 보면 태양이 하나가 아니라 세 개, 네 개, 다섯 개로 무한대로 늘어나기도 한다. 그야말로 다중(多重)우주다. 누차 이야기 한바 대로 본래 정음(正音) 자체가 소리를 시각화 한 것이다. 우주 천지자연 인간의 모든 소리를 이렇게 그림쓰기로 인간의 눈에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그림문자/상형문자로의 단순회귀가 아니다. 오히려 소리 그림 말 언어의 세계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지구상의 인간의 말만도 아니다. 재론하지만 정음(正音)에서 말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표현해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 경계까지 넘어서고 있다. 미지의 소리를 그림으로 써낸 것이자 태초 지구에 등장한 생명체내지는 우주의 소리를 써낸 것으로 해독된다. 서화로 미술을 녹여내면서 탄생된 제3그림글씨라는 점에서 미니멀 내지는 개념미술은 물론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과 같은 기존 미술의 도약을 넘어 필묵의 서화언어로 미술을 전복해내면서 탄생된 제3그림 글씨로 읽힌다.

그 본질적인 이유는 김혜련의 <그림쓰기>문자(文字)’라는 기본 구조로 화면공간이 경영되고 있다는 데에서 찾아진다. 철저하게 정방형(正方形), 그것도 직획(直劃)과 기하추상의 ━ ┃ 에다 ● ■ ▲ 만을 가지고 문자 구조/게슈탈트내지는 글자의 집을 짓고 있다. 모든 공간에 열려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음(正音)[초성 + 중성 + 종성]이라는 건축적인 구조를 부지불식간에 의식하고 지켜내고 있다. 이 점에서 구상(具象)과 상대되는, () () ()의 환원내지는 재결합 / 재구성과 같은 조합구조의 추상(抽象)과는 질적으로 다른 추상이 된다. 요컨대 정음(正音)이 절대추상으로서 언어와 예술의 원점이자 궁극임을 김혜련은 <그림쓰기> 연작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화와 기억

 

이점에서 우리말의 기록수단으로 의미축소 된 지금의 한글과 본래의 정음(正音)’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바람소리는 물론 학의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그 이상까지 모두 다 그려내는 정음(正音) 본래의 면목을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돌려내고 있다. 그래서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소리이고 말이지만 그 이상이기도 하다. 김혜련에게는 청각언어인 소리 자체가 시각언어인 그림이고, 이런 소리라는 그림을 정음으로 써내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인공지능시대 로봇이 로봇에게 하는 소리이자 화성인들 간의 소리까지 다 그림으로 쓰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신화시대 문자로 <<정음(正音)>>을 도약시키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일종의 지구의 태고적 기억이자 미지의 우주소리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음(正音)으로 정음을 넘어서면서 또 정음 이전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키보드 치기의 기억 속에 축적되고 내장된 쓰기이자 그리기의 드러냄으로도 읽힌다. 단순하게 키보드 치기문명의 대척점에 서서 정음의 현현이나 쓰기의 반동/반역으로 필획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치기 쓰기 새기기 그리기 문명에 열려있는 것이 김혜련의 그림쓰기이다. 요컨대 기계문명에 몸 언어의 저항내지는 대적을 넘어 포용의 <그림쓰기>이다. 이것은 한글을 넘어 정음의 품이 무한대(無限大)임을 증거 하는 것이자 언문일치(言文一致)를 넘어 언예일치(言藝一致)의 새로운 세계이기도 하다.

 

물론 김혜련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고조선(古朝鮮)언어 복원을 화두로 북두칠성과 같은 천문(天文), 석기 토기 청동기에 화석화된 고대 문양(文樣)의 패턴을 추적하여 신화(神話)에서 역사(歷史)로 고조선 언어를 필획해내고 있다.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기하추상문양으로 온통 암벽이 새겨져 있는 천전리 암각화의 창작주체와도 일 만 여년의 시공을 접고 내통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의 기억 속에 단절된 체로 방치된 천전리 언어를 정음(正音)과 하나로 지속가능한 현재시간으로 되돌려냄과 동시에 사실상 천전리에 대해 해석자체를 덮어둔 기존의 태도에 반성과 함께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무수히 반복되고 중첩되는 ‘X’ ‘W’ 문양이나 마름모 · 동심원 · 파형 등의 곡직(曲直)의 일만 년 전 필획문양은 2022년 오늘과 또 일만 년 후의 소리로 들려온다. 선사시대 토기와 동경(銅鏡), 가야토기 조형의 공통문양인 원 네모꼴 삼각형 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

고대인이나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우리 한국 사람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대표하는 상징조형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역으로 언어와 예술의 미래를 다시 한글에서 찾는 마당을 펼쳐내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것도 역사 심연의 태고(太古), 물질의 근원으로 돌아가 그 자체를 관()하고 염()하고 있는 지점에서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역사라는 시간을 오늘 여기 이 공간으로 불러내는 힘/에너지/마력이 김혜련의 그림쓰기다. 지금 여기가 태고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시각과 청각이 하나의 언어로 만나는 의 순간이 바로 지금 여기다. 말과 글, 소리와 그림이 4중첩되는 지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언예일치(言藝一致)의 원점 원형 또한 하늘 땅 사람이 아닐 수 없음을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암각화 가야토기 청동거울과 같은 역사유물은 물론 돌 나무 쇠 등의 물질, 몸과 소리까지 재해석되면서 무한대로 확장된다. 예컨대 김혜련의 <정음 13, 정음 20, 정음 15, 정음 12, 정음 24>와 같은 일련의 작품은 지금 나의 직계조상인 현생인류의 최초 최고(最古) 언어인 엄마와 같은 핵문(核文)너머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고래 호랑이와 같은 구상은 물론 기하추상문양들이 필획되어 있는 반구대와 천전리의 암각언어와 선사시대 도기부호인 ● ■ ▲의 연장선상에서 무수한 몸의 반복으로 기억된 이미지로 해독된다. 바로 만년의 소리를 오늘날 불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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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 12>                                <정음 15>


이런 맥락에서 김혜련의 <그림쓰기>시간의 공간화내지는 공간의 시간화를 통해 희미해져가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2022년 오늘 여기에 현현시켜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늘 사람내지는 하늘사람을 가지고 4325년 전 단군을 축지법 축시법으로 시공을 접어 오늘로 모셔왔다는 점에서 작가의 통찰력이 어디까지 인자를 짐작하게 한다.

 


고조선 찾기부터 기계언어까지

 

한글은 정사각형 안에 오직 직선 점 원형만 가지고 소리를 잡아내어/ 묶어내어/ 건축하여 눈으로 보이게 하는 문자이다. 우리말과 글, 소리와 그림의 고향은 바로 ━ ┃ 하늘 땅 사람이다. 원지방(天圓地方)이 증명하듯 우리의 고대 사상/철학/사유의 원형(原形)을 조형언어로 풀면 천 이다.

문양(文樣)은 그 자체가 언주집단(言主集團)의 고도의 상징체계(象徵體系)이자 언어(言語). 더 구체적으로 문양의 곡직(曲直) 필획(筆劃)과 구조(構造)는 집단구성원의 미적(美的) 감수성의 결정체이자 유전인자(遺傳因子)와 같은 존재다. 예컨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울음소리 이후 맨 먼저 말은 맘마’ ‘엄마와 같은 음성언어이다. ‘엄마라는 음성기호 이전에는 지시대상인 엄마라는 개념도 없었다. ‘엄마라는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에, 정음(正音)’이라는 문자가 탄생된 이후에야 말과 글이 일체로 천고의 몽롱(朦朧)함을 깨우고, 한글을 언주(言主)로 하는 족속이 비로소 이고 우리임을 여기서 새삼 확인한다.

하지만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엄마라는 말까지 해체 재구성하여 천지자연의 소리 본연의 모습을 그림으로 쓰 내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세계성 확보문제의 해결책이 어디여야 하는가를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분명히 제시해내고 있다. 김혜련의 정음 재해석 그림쓰기는 이런 맥락에서 수 천 년 동안 민족(民族)이라는 집단의 기억인 신화(神話)를 그림이라는 언어로 써낸 것과 연결되면서 다음 주자에게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면서 지속되고 있다. 그것도 몸으로 생각으로 무한 반복하면서 축적되고 길어낸 한국의 독자적인 미적 질서의 기억을 이미지로 현현해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 천 수 만 년 간, 민족의 이름으로 무수한 반복으로 응결된 미()의 질서(秩序)그림쓰기조형언어로 드러난 것이다.

 

요컨대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물질과 정신의 근원, 즉 언어와 예술의 원점에 대한 질문에 대한 작가자신의 대답이다. 몸이 쓰고 그리는 행위 자체가 언어이자 예술임을 실증해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김혜련의 그림은 소리이자 말이고, 이야기 이자 노래이다. 그것도 태초의 옹알이부터 기계시대 소리까지 다 내장되어 있다.

지구과학에서는 지구는 45억 년 전 태양계의 일원으로 탄생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말과 글은 언제부터 사용하였을까. 30억 년 전 쯤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한 이래, 이 땅에서 손을 쓰고, 두발로 걸으면서, 몸짓과 옹알이 수준의 언어를 구사한 사람 속(호모)이 나타난 것은 200만 년 전이다.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의 발로인 엄마와 같은 수준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슬기사람)가 등장한 것은 3.5만 년 전 크로마뇽인들이다. 그림언어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주인공도 그들이다. 그 이후 동서양을 불문하고 언어역사는 그림, 즉 그림문자/상형문자(象形文字)에서부터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를 통해 인간의 말이 새겨지고’ ‘쓰여 지고’ ‘찍혀져 왔다.

이런 맥락에서 김혜련의 <그림쓰기>는 미술이 버린 서()의 원점인 정음(正音)의 동굴로 온 몸으로 뛰어 들어 한국미술의 정체성 세계성을 건져 올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와 동시에 서화미술의 일체를 통해 기계시대 제3의 새로운 조형언어 창출을 기도하고 있는 현장이 김혜련의 그림쓰기이기도 하다. 특히 수천 년의 추상(抽象)에너지를 필획사의(筆劃寫意)로 내장한 서()를 가지고 소리라는 시간을 그림이라는 공간에 암시적(暗示的)으로쓰 내고, 또 쓰 내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미술의 내일이 김혜련의 붓끝에서 더욱 명료하게 써지고 있는 것이다



Hangeul as Free as the Wind

Reading Vibrant Symbols: Hunminjeongeum by Heryun Kim

 

 

Lee Dong-kook (Chief Curator, Seoul Arts Center)

 

 

Heryun Kim’s new works, presented in Vibrant Symbols: Hunminjeongeum, deal with those letters which cannot be read in an ordinary way. They cannot be interpreted in the framework and approach of Western abstract art, either. Her paintings are beyond abstract art in that she audaciously treats letters as non-letters, and prefers to call her work “writing paintings.” In ‘writing’ Hunminjeongeum, she paints sounds rather than letters, dealing with both sight and sound at the same time. It corresponds to what King Sejong wrote in Hunminjeongeum; “If heaven, earth and nature have sounds, they should have letters as well.”

 

Deconstruction of Sound

Heryun Kim’s Jeongeum Number 20 shows two symbols of sky above earth, and another symbol of sky above another earth. It has neither man nor initial consonant. This breaks the rules of Korean orthographic syllables that require the combination of an initial consonant, a vowel and a final consonant. Consequently, it may be interpreted as a sound, but not as a proper human sound. From the perspective that the balance of yin and yang is necessary for sounds and scripts, Kim’s paintings cannot be comprehended as a human sound. It cannot be read either ‘, ’ or ‘으으, .’ Presumably, it somehow sounds like the primitive babbling of the 4.5 billion-year-old earth, or that of the 13.8 billion-year-old universe. In the cases of Jeongeum Number 13, Number 20, Number 24, Number 25 and Number 26, their sounds are even weirder and also far from being correct. In a way, they sound like the moaning of nature amidst climate change and the coronavirus pandemic, considering the existence of the Earth and mankind today in 2022.

 

Square Structure


Let us go back to the structure of Jeongeum Number 20. There are two universes overlapped together. Points and lines are piled up in four layers. In the case of Jeongum Nr. 24 the number of the sun gradually increases from one to five, and may increase infinitely as the artist wishes. Indeed, it creates a multiple universe. With perfect freedom, Heryun Kim plays with , and l, which are the basic three components of hangeul, and also with geometric abstract figures, such as , and , as if she were inspired by the god of strokes. In this regard, her practice of ‘writing paintings’ surpasses the level defined by King Sejong in Hunminjeongeum; “Hangeul can express all things, from the sound of wind to the cries of a crane, a rooster or a dog.”

We usually distinguish visual language from auditory language, but Kim’s paintings completely overturn this common idea. She pursues ultimate sounds, which precede letters and even words that are the other side of letters. Finally, she ends up ‘writing’ them rather than painting them. She overthrows the limited meaning of hangeul as a means to record words, and further proceeds to paint the sound of the universe in pursuit of the Tao of heaven and earth following the original principle of Hunminjeongeum. It leads to the creation of the ‘third script in painting,’ in which calligraphy melts into painting.

In this respect, Kim makes a leap beyond the existing trends in fine arts, such as minimalism, conceptual art and abstract expressionism. She is deconstructing letters by treating them as non-letters, but still constructing images in the basic structure of the Korean script. She builds up a composition or gestalt always in a square form, using only straight lines and abstract figures, such as , , , , and . Although her paintings are widely open, she is unwittingly aware of the architectural structure of Hunminjeongeum that requires an initial consonant, a vowel and a final consonant for a syllable, and manages to maintain it all the way through. In this sense, her works are different from abstract paintings composed of simple reduction, recombination or recomposition of points, lines and planes, as opposed to representational paintings. In sum, based on Hunminjeongeum and in the style of absolute abstraction, Kim’s paintings reveal the origin and the ultimate level of language and art.

Memory

It is certain that the meaning of modern hangeul has been diminished to a means to record the Korean language, and that the letters of hangeul and the sounds of Hunminjeongeum cover different scopes of time and space, respectively. By ‘writing paintings,’ Heryun Kim embodies the true nature of Hunminjeongeum that is able to describe the sounds of wind, cranes, roosters, dogs and so forth. In her paintings, therefore, the sounds of auditory language turns into the paintings of visual language written in the form of Hunminjeongeum.

Furthermore, there is no reason why the sounds of robots and Martians cannot be written in paintings. Hence, Hunminjeongeum takes a leap forward to become the script of a new, mythical age. Based on Hunminjeongeum embedded with the memories of the Earth and the unknown sound of the universe, Kim’s paintings transcend Hunminjeongeum, even running back to the time before it. Hence, ‘writing paintings’ is like ‘typing’ a keyboard to invoke the accumulated and embedded memories, and also like revealing the act of ‘painting.’ It is open to all civilizations of ‘typing,’ ‘writing,’ ‘engraving’ and ‘painting.’ In short, she resists and confronts the machine civilization through body language, and embraces all in the end. It proves that Hunminjeongeum is not only a script but also an all-encompassing worldview. Thus, Kim has created new memories by realizing the unity of speech and art, which is beyond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Spatialization of Time


By ‘writing paintings,’ Heryun Kim secretly communicates with the ancient creators who engraved so many geometric abstract patterns on the petroglyphs in Cheonjeon-ri more than ten thousand years ago. Abandoned and neglected in the memories of Koreans, the language of Cheonjeon-ri has been brought to the present by Kim so that it can be in oneness with Hunminjeongeum. Ten-thousand-year-old strokes made the numerously repeated and overlapped patterns of X and W, and also the curved and straight lines in the forms of rhombus, concentric circles and waves in Cheonjeon-ri. These ancient patterns resonate with the sound of today, and also with that of the future ten thousand years from now. The same is true of prehistoric earthenware and copper mirrors as well as the earthenware pottery from the Gaya era, all of which share the common patterns of circle (), square () and triangle (). Keeping in line with this tradition, Kim let the fading identity of Korean art manifest itself here and now through the spatialization of time, that is, the temporalization of space.

 

Mythology


Originally, Hunminjeongeum or hangeul is peculiar in that it uses only points, straight lines and circles in a square form in order to catch, bind and construct sounds, making them visible. The heart of the Korean language, script, sounds and paintings lies in the three basic components of , and representing heaven, earth and man, respectively. According to the traditional cosmography, “The sky is round, and the earth is square.” Hence, the archetype of ancient Korean thought, philosophy and way of thinking may well be expressed as heaven (), earth () and man () in the language of art.

Patterns are in themselves highly developed symbolic systems made by each speech community. The frame of patterns is defined by the structure of curves and straight lines, reflecting the aesthetic sensitivity and the DNA of a speech community. In this respect, Heryun Kim’s practice of ‘writing paintings’ clearly suggests a solution to the two problems of Korean fine arts; the identity issue and the globalization issue. Owing to her reinterpretation of Hunminjeongeum, thousands of years of myths or the collective memories of the nation have been brought to the present by her new language in painting. The order of Korean aesthetics manifested in her images have been accumulated in multiple layers by countless mothers who have endlessly repeated body language. In other words, resulting from infinite repetition in the name of the nation for thousands of years or even for ten thousand years, the essence of the aesthetic order came to manifest itself in the artistic language written in her paintings.

 

The Brush Paints the Mind


In conclusion, Heryun Kim’s practice of ‘writing paintings’ is her own answer to the question on the origin of material and mind or the origin of language and art. She demonstrates that the bodily act of writing and painting is in itself language and art, and therefore, her paintings turn out to be sound and speech, as well as stories and songs. All sounds are embedded in them, from the primitive babbling of the beginning of the universe to the sound of the machine age. In this context, one may say that she is jumping straight into the cave of Hunminjeongeum which is the origin of calligraphy abandoned by modern painters, and with unbelievable strokes, mining for the identity and global qualities of Korean art. Simultaneously, she is trying to create the third language of art in the age of machines by integrating calligraphy with painting. In particular, by adopting calligraphy embedded with thousands of years of abstract energy, she is writing time/sound in space/painting.

It may well be said that Kim’s paintings should be defined as the integration of Eastern and Western arts, or as the unity of language and art, in which painting and calligraphy become one, with paintings and letters intertwined with each other. On the basis of Hunminjeongeum and with the help of powerful brush strokes, she is successfully wrestling with time and space in the art of language. She is energetically running all around, to the beginning and the future of sound and speech in history, to the east and the west, and to the nature and the universe. As long as she is engaged in ‘writing paintings’ and follows in the footsteps of the literati artists who treated calligraphy as a means to express their mind, the vague identity and even the scope of Korean fine arts will be much clearer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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