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역사한옥박물관 개인전 <예술과 암호-마한의 새> 작품집에 실린 인터뷰   


 

독일에서의 창작과 초기 유화 작업에 대해

 

저는 원래 독문학을 전공하였으나 언어나 문자보다는 이미지가 더 즉각적이고 중요하다는 나름의 확신을 갖게 되어 미대수업을 많이 들었고, 이어 대학원에서 서양화 이론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이나 색채, 형태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이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사조의 강렬한 색채대비가 제 안의 그 무엇인가 원초적인, 실존적인 갈증을 자극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에서 미술이론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실제로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독일로 가서 국립베를린종합예술대학 회화과에서 회화실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학사에 해당하는 압졸벤트 졸업전시의 유화 작품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아서 클라우스 푸스만 지도 교수님Prof. Klaus Fussmann의 추천으로 베를린 시내의 갤러리 암 자비니플랏츠Galerie am Savignyplatz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되었고, 독일 일간지 베를린 모르겐포스트와 타게스슈피겔의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화들은 반 고흐 또는 앙리 마티스를 연상시키는 정물화가 대부분이었으나 때때로 인물화, 풍경화 등을 그렸고 새로운 소재를 만나면 먹 드로잉으로 먼저 대상에 대해 조형적 사색을 하곤 하였습니다.

유화물감은 다루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붓이 더러워질 때, 색채를 혼합하여 만들 때, 물감이 더디게 마르기 때문에 표면이 굳기 전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물리적 법칙 안에서 자기만의 개성적인 색채를 만들어 내기 어려운 재료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유화물감의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에 더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실패해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붓질의 결과보다는 붓질의 과정이 더 즐겁다면 실패가 무슨 문제가 될까요? 처음부터 저는 유화의 물성, 즉 붓질의 특성이나 물감 색채의 병치효과, 공간의 생성 등을 발견하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밀림 속에 들어선 것 같은, 탐험의 과정이 그림그리기의 매력이었습니다. 계획된 완성본 같은 것은 없었고 오직 발견의 기쁨, 지각의 즐거움이 앞섰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유화 작품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1

유화는 심한 경우 두껍게 그렸을 때 완전히 건조하려면 몇 달이 걸리기도 하는데, 아크릴은 한두 시간이면 다 말라버립니다. 정말 편리하지요. 그런데 이 부분이 오히려 저랑 안 맞아서 채색작품을 할 때는 유화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유화의 더디게 마르는 과정이 저에게는 더 유기체 같았고 천천히 조형적 탐색을 할 시간적 여유를 주었습니다.

 

먹 드로잉 작업의 동기에 대해

 

베를린 유학 시절부터 유화와 먹은 저의 두 가지 주재료였습니다. 아크릴 물감은 저에게 안 맞아서 채색작품은 항상 유화로 그렸습니다. 불편해서 사람들이 점점 쓰지 않는 재료인 정통 서양화 재료 유화와 곰팡이 등 보관이 어려워 마찬가지로 점점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먹이 저의 오랜 작품 재료였으며 지금도 이 두 가지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유화에서 먹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유화처럼 먹을, 먹처럼 유화를 다루고 싶은 것이 저의 작가적 입장입니다.

 

유화의 검은색과 먹색의 차이

 

일반적으로 검은색 유화는 탁하고 답답해 넓은 면적을 칠했을 때 숨이 막히는 절망감을 줍니다. 표면에 기름막까지 생겨 우리가 검정에 투영시키는 부정적인 감정에 딱 맞는 인상을 주지요. 생명력이 없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색채가 주는 활력이 배제된 색채 아닌 색상, 색채라고 하기보다는 색채가 없는 상태인 면적, 무채색이라고 하지요. 서양미술사에서 그 검은색이 주된 양식적 요소로 등장한 때가 있습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카라밧지오Michelangelo da Caravaggio의 검은 배경 유화 작품들을 암흑양식이라고 부릅니다. 베를린 종합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옆에 있는 베를린공과대학 인문학부에서 예술학과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을 1997년 즈음, 로버트 쥬칼레 지도 교수님Prof. Dr. Robert Suckale1011일의 로마 현장학습을 할 때였습니다. 암흑양식의 카라밧지오 유화 작품 앞에서 숨이 막히는 강렬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온갖 화려한 색상들 못지않은 생생함, 유기체적인 생명력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며 실존적인, 마치 죽음을 직시하되 죽음을 뛰어넘으려는 강렬한 자아의식을, 카라밧지오의 검은색 유화 앞에서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순간이 잊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감동을 저 무채색이 줄 수 있는 것일까요. 그때 그 검은색은 선이 아니라 유화 그림의 배경이고 넓은 면적이었습니다. 그 검은색이 생생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것이 검은색 물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물감을 다룬 주체의 자아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붓질의 연속적인 면적, 유화 표면의 색은 컴퓨터 화면 같은 지시적 색상만이 아니라 붓질이 이루어질 때마다 작가와 물감이 이루어내는 교감의 축적물입니다. 현미경으로 측면을 본다면 수많은 산이, 골짜기가, 평야가 생기는, 붓과 물감과 바탕재의 투쟁적 축적물인 셈이지요. 원천적으로 유화물감의 표면은 덧붙여진 부조적 지표면입니다. 10년 뒤 2007, 저는 화려한 색채의 열매가 검은 배경 속에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유화 작품 가을 사과2를 제작하게 됩니다. 세로 250cm 가로 600cm 크기인 이 작품은 이듬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2015년에 저는 프랑스 패션기업 디올과의 협업으로 열두 장미3를 검은 배경의 유화로 그리게 되었고 그해 이 작품은 파리 루이비통 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카라밧지오의 검은색 유화가 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지요.


유화와 달리, 먹의 검은색은 수용적입니다. 바닥에 바탕재인 종이나 천을 놓고 그 위로 먹물이 지구의 중력에 따라 아래로 흘러내리면 나무에서 생겨난 속성 때문인지, 더 자연스럽게 또는 덜 투쟁적으로 느껴집니다. 먹을 쓰는 붓도 동물의 털이라서 그런지, 용매제인 물이 흘러가는 성질이 순화적으로 느껴져서인지, 여하간 먹의 검은색은 유화보다는 덜 투쟁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먹의 성질은 그것만이 다가 아닐 것입니다. 먹은 이제 현대미술의 실험성 안에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가능성이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2022-06-15 09;02;58.jpg

 

한국적 추상, 선에 대하여

 

추상미술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현대 서양미술사를 배우며 유입된 용어이지만 그것이 지칭하는 바는 원래부터 우리에게 내재된 미학적 요소입니다. 자연미와는 다른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선, 형태, 색채를 인간은 태초부터 표현해왔습니다. 구석기 동굴벽화 등에 나타나는 동물의 형태가 아니라 신석기 토기나 암각화 등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형태들이 그것입니다. 서양미술사에서 등장하는 현대 추상미술은 그 뿌리가 원시미술에서부터 내재한 인간 본연의 예술 충동입니다. 이러한 인간 본연의 예술 의지를 현대에 와서 추상미술이라고 이름 붙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적 추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은 원래부터 모든 민족 문화에 내재한 본래적 현상입니다. 그런데 각 민족은 문화에 따라 조형적 선호도가 다르게 전개되는데, 산업화를 거치면서 현대에 와서는 마치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개념만이 정답인 것처럼, 추상미술이 새로운 발명품인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추상미술은 발명품이 아니라 발견품입니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한국의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명료해집니다.

한국은 매우 오래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식민사관에 의해 한사군 이전의 한국의 선사문화는 마치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또는 국수주의적인 퇴행적 태도일까 두려운 듯, 공정하게 우리의 과거 문화 또는 과거 미술을 판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료에 없으니 있지 않은 역사일까요? 글자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인간의 문화는 모두 역사가 아닌가요? 기록 문자가 생겨나기 전 이야기인 신화나 전설의 내용은 모두 허구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현대 고고학의 업적이 이것을 모두 증명해 줍니다.

구전설화 등 민족 언어가 문자 이전의 역사를 남겨놓듯이 우리가 문양이라고 부르는 전통 미술 형태는 선사시대의 문화공동체가 가졌던 정신적 상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의미체계는 변색해도 그 형태는 민족문화의 이면에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추상미술의 뿌리이며 한국 미술의 주요 원소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고유한 조형적 선호도를 보이며 특별한 미학적 성과를 이룩한 한국 미술은 이제 현대미술적인 시각에서 재발견하고 재평가되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민족주의적인 시각이라는 비판에 두려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 미학적 탁월함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미술은 그 추상성에서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보여준 중요한 미학적 현상 중에서도 놀랄만한 역량과 업적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자연환경 때문인지, 사용 가능한 재료 때문인지, 민족성 때문인지 저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인 유물 또는 조형 작품의 미학적 수준은 놀랍도록 경탄스럽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한국미술은 선이다, 유려한 곡선미가 있다고 하지만 이때의 선은 자연적 형태만을 강조한 곡선이 아니고, 보는 이를 제압하려는 공격적인 직선도 아닌, 직선과 기하학적 곡선이 상호보완을 이루며 움직이는, 내면의 정신적 가치를 끌어내는, 상징적 형태를 만들어 내는 선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그려내어도 초월적 가치를 함축한 추상성이 살아나는, 여기 있어도 여기 있지 않은, 이곳에 살아도 저곳에 살고 있듯이, 마음을 다 비우고 물질 위로 그려내는 선입니다. 상징적 행위에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의 선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미술은 정말로 민화조차도 본래적 의미에서 추상미술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선이라는 뜻입니다.

 

먹선의 밀도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우리는 2천 년 넘게 먹과 붓으로 글자를 썼던 문화공동체였기 때문에 먹 선이 친숙한 것 같습니다. 손맛이 살아있는 필체가 신선하게 느껴지듯이 붓으로 그린 먹 선은 사람의 온기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감성적 수사법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동물 털로 만든 길고 굵은 붓에 먹물을 가득 담고 선을 하나 그어봅시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물의 양에 따라, 팔의 동작에 따라, 잡념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종이가 벽에 붙어 있는지 바닥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상들이 생겨납니다. 먹이 만들어 내는 선은 계획적이지 못합니다. 순간의 몸동작이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기 때문에 정신수양과 비슷한 경로를 보입니다. 호흡을 다스리고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면 먹 선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습니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제 붓글씨는 의사전달이 아닌 상태 전달의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작업을 많이 할수록 빠른 선이 다 속도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느린 선이 다 평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은 그 물리적 속도와는 별개로 선을 그을 때의 의식의 집중도가 곧 그 선의 밀도를 만들어 냅니다.

 

전통 문양에서 주목하는 요소

 

우리가 문양이라고 부르는 형상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고정적 형상, 패턴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장식적 기능의 도상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도상들은 장식적 기능이 아니라 어떤 초기 문화권의 중요한 의미체계를 압축한 기호이자, 자연과 우주를 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그림으로 간략히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지금의 용어로 보자면 일종의 추상미술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그려보려고 했다든지, 우주의 원리를 그리려고 시도했다든지, 땅에 대한 개념을 표시하고 싶다든지, 하늘이나 무한을 표기하고 싶다든지, 보이는 사물을 넘어 보이지 않는 개념을 그려내려는 시도들이 이러한 상징 문양들이었습니다. 이런 문화공동체의 상징기호가 세상이 바뀌면서 공동체를 표지하는 표식이 되었고 나중에는 초기의 상징 의미가 사라지고 친근하고 익숙한 전통문양이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백 년 전 베갯잇 옆면 문양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빗살무늬, 번개무늬, 삼각연속무늬가 숨어 있고 청동기시대의 엑스자 형태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겹 사각형 도상들도 보입니다. 전통 문양 속에는 수천 년 이어온 옛날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기록문화가 다 채울 수 없는 부분들, 즉 구전으로 이어져 온 민족 저변의 감수성이 전통문양 속에서 소리 없는 부호처럼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형상 중에서 특정 민족이 좋아하는 문양들은 확실히 구별됩니다. 언어가 다르듯 형상에도 선호도가 작동하며 흘러온 것입니다. 거기에는 문자로 기록되지 못한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문자의 역사가 수천 년이라면 인간 미술의 역사는 구석기를 제외하더라도 만 년 이상입니다.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그림은 문자의 모태적 자양분이 되었고 문양의 형태로 공동체에 지속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문양의 통시성에서 저는 민족 고유의 조형감각을 발견합니다.

 

 

박물관과 유적지 답사, 문양연구 과정에 대해

 

미술과 역사를 특히 좋아한 것은 개인의 취향이었지만 독일에서 귀국한 후에는 일종의 책임감으로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한국의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녔습니다.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시대별 구분이 생기고 지역별 특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도시별 주요 문화재를 기입한 저만의 여행 메모 카드가 생겨났습니다. 흥미를 느끼는 문화재만을 기입하고 방문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예술적 성과도 컸습니다. 답사 여행을 다녀오면 좋은 작품이 나오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박물관 유물 관찰로 이어졌고, 전시실에 한 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못하여 박물관 지킴이 분들이 의아스러워 한 적도 더러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유럽의 미술관이나 한국의 박물관이나 다 중요했고 현재는 한국의 박물관에 푹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고등교육을 받을 때는 전혀 몰랐던 고고학적 유물이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놀랍도록 많이 발굴되어 저를 경탄스럽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저는 한국 고대미술과 사랑에 빠진 사람 같습니다. 이토록 창의적인 조형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인지 존경스럽고 궁금해서 선으로 모사해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문양 드로잉이 평면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

 

한국 고대문화의 문양 드로잉이 수백 장 되어갈 즈음에 이러한 미학 세계를 현대적 미술 어법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났습니다. 고대 문양 연구를 작품을 통해 시각적으로 공간적으로 증폭시킬 욕구를 느끼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저의 미적 발견이 진실할지라도 그 결과는 진부한 복고주의, 시대착오적 아집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주장이 옳다고 좋은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실하다고 다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좋은 작업에는 일종의 파격이 필요합니다. 파격을 감당할 용기는 좋은 예술에서 항상 발견되는 어떤 힘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은 어떤 지렛대 같은 것이지요. 이런 집중력이 작동할 때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오곤 했습니다.

 

예술과 암호전시 시리즈에 대해

 

미술품의 형태에 감정 이입할 때 선의 흐름에 주목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재료에 따라 거친 선이 되든, 세밀한 선이 되든, 선은 창작자의 예술의지가 즉각 드러나는 일차적 미술 요소입니다. 그러한 선들이 만들어 내는 형상은 창작자가 사는 시대의 문화적 특질을 담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미술품들은 언어나 문자 이전에 이미지로서 자기 발언을 합니다. 자신의 문화사적 맥락을 즉각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8년 신석기 토기 문양들로 예술과 암호-빗살무늬5라는 협업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했고, 이듬해에는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예술과 암호-고구려의 기와문양6으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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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구석기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까지 실용도구의 측면으로 역사를 구획하지만, 사실 그 시대들은 매우 점진적으로 때로는 비연속적으로, 때로는 동시대적으로 병행하면서 진행해온 인류의 긴 과거사입니다. 우리 역사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고조선은 대체로 청동기시대에 해당되는데 그 긴 3천 년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빗살무늬 신석기 토기는 고고학 유물로만 남겨두고 청동기는 그대로 건너뛰어 다음 단계인 철기시대 삼국 또는 사국 고대사 얘기만 합니다. 그 긴 기간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예술품을 남겼을까요?

저는 이 부분이 너무나 궁금했었기 때문에 이 시간적 간극에 놓여있는 민족 공동체의 조형적 이미지들을 연구하여, 2020예술과 암호-고조선7이라는 연작을 제작하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엔 청동기시대 곧 고조선시대와 겹치는 기간이자 그 구체적 표식인 고인돌의 암각화를 답사하여 예술과 암호-고인돌의 그림들8을 제작하여 발표하였고, 이번 전시에서는 더 세분화하여 청동기와 초기철기 삼한시대를 지시하기 위해 예술과 암호-마한의 새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시기에는 실제로 한반도에 많은 소국이 있었습니다. 이 소국들은 정치적 군사적 규모는 작았을지 모르지만 남겨진 미술품들은 정말 미학적입니다. 제 눈에는 제대로 된 예술적 평가를 못 받아본, 마치 동화책 미운오리새끼의 백조처럼 보입니다. 물론 오리가 백조보다 못하다고 보는 시각도 편견에 불과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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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적의 소리창작과정에 대해

 

박물관 기획실의 1부 전시를 마한의 새로 지시했다면, 한옥으로 이루어진 별관인 삼각산금암미술관의 전시는 암각화와 먹의 만남이라는 회화적인 문제로 진행하게 됩니다. 나주, 임실, 삼척을 직접 답사하고 탁본한 고대 이전의 암각화들을 그 조형적 가치에 집중하여 먹으로 극대화한 작품들을 문양 연구삼척 실직국이라는 제목으로 1층에서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한옥의 2층에 올라가면 정적의 소리라는 먹과 붓, 한지와 나무판, 송곳과 풀 등을 활용한 실험적 작품들로 전시가 마무리됩니다.

제목을 정적의 소리라고 한 이유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제 작업실에서의 경험에 있습니다. 독일은 숲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숲의 생명력은 인간 생존에 공기와 같이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여가활동의 공간이 아니라 인류 생존과 직결되는 지구적 조건입니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 있는 제 작업실에서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정말로 정적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대화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목소리도 아니고, 또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먼지 같은 잡념의 소리도 아닌, 적막한 듯이 느껴지나 실은 거대한 자연이 만들어 내는 웅장하고도 매우 고요한 생명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집중하면서 그린 대형 작품들로 2019년 초 독일 드레스덴 쿤스트할레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그때의 전시 제목이 정적의 소리-독일 숲4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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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국에서 마주한 유적지인 반구대 등의 작품에도 정적의 소리-반구대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제가 그림을 그리는 동작과 그 결과물인 작품이 지구 위의 특정 시공간과 대상에 대한 자각과 경외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지속적으로 정적의 소리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나 기계음을 멈춘 상태에서 비로소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의 소리에는 하늘, 구름, 바람, 별뿐 아니라 진실된 예술품의 소리까지 포함됩니다.

 

 

삼척의 암각화를 모티프로 한 삼척 실직국시리즈에 대해

 

마한이라는 시대, 또 다른 말로 삼한시대라고 지칭된 그 시대에 실제로 한반도에는 수많은 흥미로운 소국들이 있었음을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는데요. 문자 기록에는 있으나 시각적 경험으로는 우리가 겪기 어려운 시대인데, 전국의 유적지 답사를 십 년 넘게 하다 보니 의외의 발견, 학계에는 아직 알려진 것 같지 않은 암각화를 발견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삼척의 죽서루 인근의 암각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성혈이 새겨진 큰 바위가 아니라 그 근방에 숨어 있는 아주 작은 기하학적 그림의 암각화를 발견하고 이를 탁본하여 자세히 관찰해 보았습니다.11(1) 현대예술은 학문적 성과에 큰 도움을 받지만 때로는 학문적 논리체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으로 틈새 인식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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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 벽련마을 여행 중에서 발견한 암각화,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것 같으나 제 눈에는 너무나 중요한 시각적 자료인 숨은 바위 그림에서 기획실 천장에 설치된 먹 작품이 나왔던 것처럼, 삼척의 숨은 바위 그림에서 삼척 실직국이라는 대형 먹 작품들이 나왔습니다. 이 바위 그림이 저의 흥미를 끄는 이유는 2년 전 동해안 여행에서도 비슷한 시각적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관령박물관이라는 곳에서 강원도 민간지역에서 수집된, 자수로 이루어진 가마장식술의 문양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었습니다. 한글의 구조적 성질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바람개비 문양같이 힘이 있기도 한, 기하학적 조형미의 조그만 자수 문양이었는데이 삼척 바위 그림의 조형적 구성이 그것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신라에 정복되지만 동해 및 삼척에 실제로 있었던 실직국의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인용함으로써 연해주의 옥저에서부터 동해안의 동예로 이어진 고대 한국문화권의 조형미를 소환시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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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실직국나주 운곡동시리즈의 표현기법

 

문양 연구라는 주제로 캔버스 천을 바닥에 놓고 그렸지만 나주 운곡동시리즈10(2) 는 천의 앞 면, 즉 유화의 기름이 천에 침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탕재로 미리 칠해지는 하얀 젯소가 있는 앞면에 그렸습니다. 따라서 먹물의 수분이 천 사 이로 흘러내리지 못하고 캔버스 천 하얀 표면 위 에서 서서히 마르게 됩니다. 이때 물은 추가적 으로 먹과 서로 뒤섞이며 아주 천천히 마르기 때문에 가로 200cm 세로 200cm라는 마당 같은 표면 위에 수채화 같은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반면 삼척 실직국시리즈11(2) 는 젯소 칠이 없는 아사천의 뒷면에 직접 그려짐으로써 물기가 순식간에 중력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천의 두께만큼 아래로 흘러내린 물기는 천의 반대편에 있는 젯소 칠 부분에 닿아 번지면서 비로소 멈추게 됩니다. 나주 운곡동시리즈 의 물기는 젯소 표면 위를 흘러가면서 먹과의 우연적인 뒤섞 임으로 추가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면 삼척 실직국시리즈 의 물기는 바로 아래로 흘러 내려가 처음 붓질의 먹색만이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있게 됩니다.

 

먹 작업의 확장성과 앞으로의 구상

 

바탕재로 저는 한지뿐 아니라 면천, 아사 천, 모직천 그리고 나무판도 사용합니다. 부분적 으로 아크릴 단색을 추가한 경우도 있지만, 언젠 가 유화물감이 먹과 합쳐지면 정말 흥미로운 작 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물론 작품의 동기부여 는 실험적 재료에서 오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 은 대상 또는 주제에 대한 설렘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고 고학적 유물의 상징연구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한반도, 요 동반도,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메소포타미아 등 흥미진진한 소재가 매우 많습니다.

 

artist monograph <Arts and Code-Birds of Mahan> by Eunpyeong History Hanok Museum 


Interview


On the artistic career in Germany and early oil paintings

 

I originally majored in German Studies, but also took fine art classes because I became convinced that images were more immediate and important than language or writing, and eventually, ma­jored in Western art theories in graduate school. In those days, I realized that I was specially sensitive to lines, colors and forms, and in particular, that stark color contrasts in Ger­man expressionism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stimulated a certain primitive and existential thirst in myself. With a master’s degree in art theory, I decided to become a real painter, and left for Ger­many to enter the undergraduate program at Ber­lin University of the Arts in order to study art tech­niques. As my oil paintings received very good reviews at the graduation exhibition, I was given a chance to hold my first solo exhibition at the Galerie am Savignyplatz in Berlin upon the recom­mendation of my academic advisor, Prof. Klaus Fussmann. It was well reviewed by two German daily newspapers, Berliner Morgenpost and Der Tagesspiegel. At that time, while most of my oil paintings were still lifes reminiscent of Vincent van Gogh’s or Henri Matisse’s, I also drew portraits and landscapes at times, and used to deepen my figurative thinking about artistic objects by draw­ing in Korean ink whenever I encountered new materials.

Oil paint is very difficult to use. It takes a long while for oil paint to dry up, so you have to find a way to deal with it before the surface hardens, when washing a dirty brush or mixing different colors. It is difficult for painters to create their own unique colors with oil paint within the laws of physics. In experimenting with oil paint, however, I was not afraid of failure from the start because I was more interested in processes than results. Why are you afraid of failure if you enjoy the process of making brush strokes more than its results? From the beginning, it amused me to learn about the physical properties of oil paint, such as the characteristics of brush strokes, the juxtaposition of colors and the creation of space, so I could continue to work on oil paintings. To me, the attraction of painting was experimental processes, like stepping into a jungle. Without any plan for completion, I only pursued the joy of discovery and the pleasure of perception so that I could work without exhaustion

1.

In extreme cases, it takes even a few months for thick oil paint to dry up completely, while acrylic paint dries up in one or two hours. It is really convenient. This convenience, however, did not appeal to me, so I mainly used oil paint for color painting. The slow drying process of oil col­ors looked like an organism to me, and gave me some free time to make figurative explorations slowly.

 

On the motive for Korean ink drawing

 

Since my student years in Berlin, I have worked with two kinds of material, oil paint and Korean ink. As acrylic paint did not appeal to me, I have always used oil paint for color painting. Oil paint, the traditional material of Western art, is becoming less and less popular because of its inconveniences, and so is Korean ink because it easily gets moldy in storage. Yet, I have used both of them for a long time until today. From my per­spective as a painter, it is not that I have changed my material from oil paint to Korean ink, but that I want to use Korean ink like oil paint and oil paint like Korean ink.


On the difference between black oil paint and black Korean ink

 

In general, black in oil paintings looks murky and stiff, giving a sense of suffo­cating despair when painted on a large plane. In addition, with a film of oil on the surface, its impression matches our negative feelings projected on the color. In other words, it looks like lacking vitality. It is a color that is not colorful, devoid of energy that a color can give, so a plane painted in black looks rather col­orless and achromatic. In the history of Western art, however, the color black once emerged as a leading stylistic element. During the Baroque pe­riod in the seventeenth century, Michelangelo da Caravaggio created the style of tenebrism (derived from the Italian ‘tenebroso’ which meant dark) characterized by the dominance of dark back­grounds and extreme contrasts of light and dark colors. In 1997, as a doctoral student in art history at Technical University of Berlin located next to Berlin University of the Arts which I had graduated from, I went on a field trip to Rome with my aca­demic advisor, the late Prof. Dr. Robert Suckale, for eleven days. In front of Caravaggio’s oil paint­ings in the tenebrist style, I was deeply moved and stunned by his breathtaking masterpieces. Black in his oil paintings was as vivid as any other flamboyant color in the world, and its vitality was more spiritual and existential than physical and or­ganic, expressing his intense self-consciousness as if he had looked squarely at death and tried to transcend it. I still cannot forget that moment. How could an achromatic color touch my heart so much? In Caravaggio’s oil paintings, it was not lines but backgrounds and large planes that were painted in black. As to why the dark color conveyed such a vigorous impression, I think that it was not only a matter of black paint, but also relevant to the self-consciousness of the sub­ject who painted the color. Painted by numerous continuous brush strokes, colors on the surface of an oil painting are the accumulation of com­munications between the painter and oil colors made by each brush stroke, unlike colors on the screen controlled by computers. If observed from the side with a microscope, the surface will show countless mountains, valleys and fields resulting from accumulated struggles among the brush, the paint and the background. Fundamentally, the surface of an oil painting is that of bas-reliefs. After ten years, in 2007, I painted Autumn Apple2 in oil which represented a colorful fruit gradually disappearing in time against a dark background. In the size of 250cm×600cm, this painting was col­lected by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in the following year. In 2015, in collaboration with the French fashion company Dior, I also painted Twelve Roses

3 in oil against a dark background, which was collected by the Louis Vuitton Foundation that year. Indeed, Cara­vaggio’s dark oil paintings had a deep influence on me.

On the other hand, black in Korean ink paintings looks receptive. If I drop Korean ink on a paper or cloth background on the floor, ink drops will fall down according to the law of gravity in a way that feels more natural or less aggressive probably because of the nature of Korean ink orig­inally made from trees. It may be due to traditional brushes made of animal fur, or due to the nature of water solvent that gently flows, and in any case, the color black of Korean ink looks less aggres­sive than that of oil paint. Still, it is not the only characteristic of Korean ink. In my opinion, there is a great possibility that Korean ink will rise to a new level as an artistic medium in the experiments of contemporary art in the future.

 

On Korean abstract art and lines

 

The concept of abstract art was intro­duced to Korea as the nation began to learn contemporary art history of the West, but the referred aesthetic style has always been inherent in Korean art. From the beginning of time, human beings have expressed their feelings through lines, colors and forms, dis­tinct from natural beauty and endowed with symbolic meaning. It is manifested in geometric forms found in Neolithic earthenware and petroglyphs, distinguished from animal forms found in Paleolithic cave paintings. Contemporary abstract art in Western art history is also rooted in the artistic impulse of intrinsic human nature inherent in primitive art. This hu­man quest for art came to be named as abstract art in modern times. Thus, Korean abstract art is not an independent phenomenon, but in line with universal abstract art inherent in all national cul­tures from the beginning. Then, each nation has taken a different path according to the figurative preference of each culture, but with the advent of industrialization, a misleading idea has emerged that abstract art is the new invention of the West, as if concepts from Western art history were the only correct answers. The point is that abstract art is not an invention but a discovery. If you look into Korean art history based on this premise, the situ­ation becomes clear.

Korea has a very long history and cul­ture of its own. In these days, however, Koreans tend to avoid evaluating their traditional art and culture fairly, especially when it comes to Korean prehistoric culture before the period of the Four Commanderies of Han (from 108 B.C. to the early fourth century), as if they were suffering from col­lective amnesia under the influence of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or as if they were afraid to be ac­cused of being nationalistic or anachronistic. Is it reasonable to deny history because it has no written records? Is it reasonable to assume that all human cultures without written records are not history? Is it reasonable to assume that all myths and legends, that is, stories born before the inven­tion of writing, are fictional? The answer is no, of course. The achievements of modern archeology prove it all.

As the history of the Korean nation be­fore the invention of writing was handed down by their language in the form of oral folk tales, the traditional forms of Korean art, or patterns as we call it today, tell us about the spiritual symbols held by the prehistoric cultural community of Ko­reans. The semiosis has changed, but the forms have survived on the hidden side of the nation’s culture until today. This is the root of abstract art as well as a major element in Korean art. Over a long period of time, Korean art has achieved special aesthetic results with distinctive figurative preferences, and it is time that it should be redis­covered and reevaluated from the perspective of contemporary art. There is absolutely no need to be afraid of criticism that it is a nationalist view because the aesthetic excellence of Korean art has certainly not been properly respected yet. In terms of abstractness, Korean art has shown re­markable power and achievements, compared to other major aesthetic phenomena shown by man­kind since prehistoric times. I cannot tell whether it was made possible by natural environment, or by available materials or by the national character. All I can tell is that the aesthetic level of the result­ing artifacts is surprisingly marvelous.

They usually say that the essence of Korean art lies in its lines, praising the beauty of elegant curves. These curves are neither simple curves emphasizing natural forms, nor aggressive straight lines dominating viewers. Rather, they express symbolic forms in which straight lines and geometric curves are moving in complemen­tary cooperation in order to reveal inner spiritual values. Thus, those who created such lines must have drawn them on available materials with an empty mind, as if they had existed there but simul­taneously not existed, or as if they had lived in one place but simultaneously lived in another. Conse­quently, they were able to convey abstractness and transcendental values in whatever they drew. Such lines could be created only by those who un­derstood symbolic action to a great extent. In this respect, Korean art, including even folk paintings, is abstract art in its original meaning. It means that lines represent the invisible in Korean art.

 

On creating density in Korean ink lines

 

Koreans are naturally familiar with Korean ink lines because the Korean cultural community has been using Korean ink and brushes for writing for about two thousand years. As handwrit­ing feels fresh because it delivers the writer’s personality, Korean ink lines drawn with a traditional brush vividly delivers the human touch. This is not emotional rhetoric but a truth in reality. Let us draw a line with a long thick brush made of animal fur fully soaked in Korean ink. Then, we will see unexpected incidents happen. Totally different forms will emerge according to many conditions; the amount of water, the movement of arms, whether we are concentrating or dis­tracted or whether the paper is placed on the wall or on the floor. Like this, Korean ink lines cannot be premeditated. As an instant body movement may lead to totally different results, the way of line drawing is similar to that of mind discipline. We cannot draw a proper line if we cannot control our breaths and thoughts. In this age of computers and electronic writing, calligraphy seems to func­tion as a medium of communicating conditions, rather than as that of communicating ideas. The more we practice, the more we realize that fast lines are not necessarily speedy, and that slow lines are not necessarily peaceful. Without regard to physical speed, the density of lines depends on the concentration of consciousness at the mo­ment of drawing.

 

On the noteworthy elements of Korean traditional patterns

 

Most of the traditional forms, or pat­terns as we call it today, are fixed forms handed down for centuries, namely, icons serving an ornamental function. In the past, however, the function of these icons was not ornamental because they were symbols epitomizing the impor­tant semiosis of an early cultural community, and also efforts to give concise explanations about invisible concepts, such as nature and universe. In today’s terms, they are a kind of abstract art. When describing the order of nature, the workings of the universe, the concept of land or the infinity of the sky, they tried to visualize invisible concepts beyond visible things through symbolic patterns. As times changed, the symbolic signs of the early cultural community came to represent the com­munity itself, and eventually lost their initial sym­bolic meaning to turn into familiar and friendly tra­ditional patterns. For example, there is a hundred-year-old pillowcase that has embroidered patterns on its sides, in which the Neolithic patterns of comb, lightening and triangle are hidden, along with the X-pattern from the Bronze Age and the double-square pattern from the ancient tomb mu­rals of Goguryeo. Thus, thousands of years of old stories are hidden in Korean traditional patterns.

Some parts missing from written history, that is, the orally inherited collective sensibility, are hidden in traditional patterns, like silent signs. A nation’s favorite patterns are clearly distinguished from countless other forms. As language dif­fers from nation to nation, forms have also been selected according to national preferences. The unrecorded history is hidden in them. While the history of writing is a few thousand years long, the history of human art is more than ten thousand years long, even when excluding the Paleolithic Era. In the development of human intelligence, paintings set the stage for the invention of writ­ing, and have continued to survive in the form of patterns in national communities. I can see the intrinsic artistic sense of Koreans in the diachronic forms of traditional patterns. Korean traditional patterns prove the fact that the nation has its own special aesthetics rooted in its long history.

 

On the exploration of museums and historic sites in symbol studies

 

Personally, I am particularly fond of art and history, and after my return from Germany, I took family trips to historic sites in South Korea with a sense of responsibility. The more I explored, the more I learned about periodization and regional characteristics. Before I knew it, I had my own travel memo cards filled out with major cultural properties of each city. Only those cultural properties which interested me were written down in memos, so my visits had fruitful artistic results. I used to come out with satisfactory works after each field trip. Later, it lead to the observation of antiqui­ties in museums, and I used to stay in exhibition rooms so long that some museum staff were baf­fled from time to time. To me, both European and Korean museums were equally important, and I am currently absorbed in exploring Korean mu­seums. I am amazed that an astonishing number of archeological artifacts, which I was unaware of during my school days, have been excavated during only one generation. In a word, I am in love with Korean ancient art. With much respect, I wondered how such creative forms had come into being, and could not help making line drawings about them.

 

On the development from pattern drawings to paintings

 

By the time I had made hundreds of drawings on Korean ancient patterns, I began to feel a responsibility to translate this aesthetic world into the contempo­rary artistic grammar. In other words, I came to have an urge to amplify my knowledge on ancient patterns through my works visually and spatially. Other­wise, it would most likely end up in a reactionary cliche or anachronistic stub­bornness, no matter how sincere my aesthetic discovery might be. Good arguments do not necessarily produce good art. As sincerity does not necessary lead to good art, the production of good art requires a kind of extraordinary break­through. Courage to cope with it comes from certain power discovered in all good art. It is a kind of lever based on self-belief. I used to create satisfactory works when I had such concentration.

 

On the exhibitions of the Arts and Code series

 

I have spent much time focusing on the flow of lines when appreciating the forms of artworks with empathy. Lines are a primary artistic element immedi­ately revealing the artistic will of a paint­er, whether they are rough or elaborate according to the nature of material. The forms made by those lines inevitably reflect the cultural peculiarities of the times that the painter lives in. Ancient artworks speak for themselves through images before lan­guage and writing. They spontaneously prove their cultural context. In 2018, I held a collaborative exhibition on the pattern of Neolithic earthenware under the title Arts and Code: Comb Pattern5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also a solo exhibition Arts and Code: Roof-Tile Patterns in Goguryeo6 at the Jeongok Prehistory Museum in 2019. In general, the entire human history is periodized by the nature of practical tools, from the Paleolithic, Neolithic, Bronze and Iron Ages, but in fact, these periods have progressed slowly and gradually in the long history of mankind, sometimes discontinuously and sometimes con­temporarily. The same is true of Korean history. The first Korean state, Gojoseon, existed during the Bronze Age on the whole, but today’s Koreans seem to be allergic to the three-thousand-year-long history of this ancient kingdom. They think of Neolithic comb pottery as mere archeological antiquities and pay little attention to the Bronze Age, while only focusing on the following phase of the Iron Age dominated by the three ancient king­doms (Goguryeo, Baekje and Silla) or by the four ancient kingdoms (with Gaya included). During such a long period before the Iron Age, how did Korean ancestors live? What kind of artworks did they make?

My curiosity about this issue drove me to study figurative images found in the antiquities of Korean ancient communities during this time span, and my works on this subject were present­ed at the exhibition Arts and Code: Gojoseon7 in 2020. In the following year, I held another exhibi­tion Arts and Code: Petroglyphs on Dolmens8, presenting my works done after research and exploration on dolmens and petroglyphs, which were concrete signs of the Bronze Age that Gojo­seon belonged to. Then, for the current exhibition, I further subdivided historical periods, and chose the title Arts and Code: Birds of Mahanin order to specifically refer to the period of the Three Han States during the Bronze and early Iron Ages.

As a matter of fact, there existed many small political entities on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is period. Their political and military presence was rather small, but their remaining artworks are truly aesthetic. In my eyes, they look like the swan in The Ugly Duckling as they have never been ap­preciated properly as art, although it is only a prej­udice that ducklings are below swans, of course.

 

On the making of The Sound of Silence series in the Part II of the exhibition

 

The first part of this exhibition, Birds of Mahan, is displayed at the main building of the Eunpyeong History Hanok Muse­um, while the second part is displayed at its annex at the Samgaksan Geumam Art Museum, a beau­tiful hanok (traditional Korean house). The latter deals with the artistic issue of the encounter be­tween petroglyphs and Korean ink. The paintings of two series, Symbol Studies and Samcheok, Kingdom of Siljik are exhibited on the first floor of the annex, for which I took field trips to Naju, Imsil and Samcheok in order to take rubbings of prehistoric petroglyphs, and maximized their figu­rative value in Korean ink paintings. Then, on the second floor of the annex, the experimental paint­ings of The Sound of Silence series are exhibited, made with various materials, such as Korean ink, brushes, awls and glue on Korean paper or wood.

The title of The Sound of Silence came from my experience in my studio located in Ber­lin. Germany is well known for cultivating and preserving forests, and the vitality of forests is an essential condition for human survival, like breath­ing air. Forests are a global prerequisite for human survival on earth, rather than a space for leisure activities. While painting all day in my studio in the middle of a dense forest, I really heard the sound of silence. It was neither a human voice as it was not a conversation, nor the sound of dustlike, dis­tracting thoughts in my head. Instead, I sometimes heard the sound of life, a very quiet but also ma­jestic sound made by immense nature. Concen­trating on that sound, I worked on a series of large oil paintings, which would be presented at a solo exhibition at Dresden’s Kunsthalle Lipsiusbau in early 2019, under the title The Sound of Silence: German Forest4. Later, in South Korea, I worked on another series of large oil paintings based on the motif of the historic petroglyphs engraved on a rock terrace called Bangudae, and also named it The Sound of Silence: Bangudae. Then, I real­ized the fact that both my action of painting and the resulting works were based on my self-aware­ness and a sense of awe vis-a-vis a particular object at a particular time and space. From then on, I have continued to work on The Sound of Si­lence series. We cannot hear the sound of nature unless all human languages and machine sounds stop completely. Then, we can hear the sound of nature, including the sounds of the sky, clouds, stars, wind and even true artworks.

 

On the series of Samcheok, Kingdom of Siljik based on the motif of petroglyphs

 

During the Mahan period or the period of the Three Han States, there existed numerous interesting small political enti­ties on the Korean Peninsula, according to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published in 1145). Their existence is documented in historical records, but it is difficult for us to have a visual experience about their culture. Person­ally, while taking field trips to historic sites all over South Korea for more than ten years, I unexpect­edly discovered new petroglyphs on occasions, which seemed to be unknown to scholars yet. Last fall, I visited Jukseoru in Samcheok to see petroglyphs on a huge rock widely known for its sacred holes. Then, at a short distance from the famous rock, I also found a very small, hidden petroglyph with geometric images, and took a rubbing of the stone for a closer look

11(1). Con­temporary artists get great help from academic achievements, but sometimes get a chance to perceive things from a new perspective because they are free from academic logics.

From the hidden petroglyph in Sam­cheok came the large Korean ink paintings of the Samcheok, Kingdom of Siljik series, just like the Korean ink paintings hanging from the ceiling in the exhibition hall of this museum came from another hidden petroglyph discovered during my field trip to the Byeokryeon Village in Namhae in the North Gyeongsang Province, which seemed to be unknown to scholars, but nevertheless be­came a very important visual reference to me. The petroglyph in Samcheok particularly interests me because I had a similar visual experience during my field trip to the eastern coast two years ago. At the Daegwanryeong Museum there, I discov­ered an amazing aspect when closely observing a pattern embroidered on the Palanquin Tassel collected from a private location in the Gangwon Province. It was a small, geometrically balanced pattern that seemed to resemble the structure of hangeul or the form of a powerful pinwheel9, and its figurative composition was very similar to that of the petroglyph in Samcheok. By citing the name of Siljikguk, which really existed in the region of Donghae and Samcheok but came to be con­quered by Silla, in the title of my series, I want to recall the figurative beauty of ancient Korean cul­ture that once flourished in the region from Okjeo on the East Siberian coast of the Pacific to Dong-ye on the eastern coast of Korea.

 

On the artistic technique used in Samcheok, Kingdom of Siljik and Naju Ungok-dong

 

The paintings of both series, Samcheok, Kingdom of Siljik and Naju Ungok-dong, deal with the subject of pattern studies, and I painted them on canvases placed on the floor. In the case of Naju Ungok-dong10(2), I painted on the front side of canvas preliminarily painted with white gesso in order to prevent oil from permeating the linen cloth. Accordingly, water-based Korean ink did not permeate the cloth, but instead, slowly dried on its white surface. In this process, water was ad­ditionally mixed up with Korean ink on the surface and dried extremely slowly so that the watercolor-like effect was maximized on the huge canvas in the size of 200cm by 200cm. On the contrary, in the case of Samcheok, Kingdom of Siljik11(2), I paint­ed directly on the back of the cloth without gesso so that water instantaneously permeated it and flowed downward according to the law of gravity. It did not stop flowing down through the cloth until it reached the other side of canvas painted with gesso. While water in Naju Ungok-dong spread on the surface painted with gesso and got mixed up with Korean ink with accidental effects, water in Samcheok, Kingdom of Siljik flowed down directly to the other side of canvas, leaving the initial black brush strokes vivid and intact.

 

On the potential of Korean ink painting and future plans

 

As the background of Korean ink paint­ings, I use not only Korean paper but also cotton cloth, linen cloth, woolen cloth and wood panels. I have partially used a single acrylic color in some of my oil paintings, and also have expectations that mixing oil paint and Korean ink will produce really interesting works some­day. Experimental materials motivate me to pursue new ways, of course, but it is more important to find an object or a subject that makes my heart flutter. I will continue to study the ancient symbols of archeological artifacts in the future. There are many places with exciting materi­als, such as the Korean Peninsula, the Liaodong Peninsula, Siberia, Central Asia and Mesopotamia.

 

Translated by Sohn J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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