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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이 깃드는 선, 우리를 기도로 이끄는 선
이정우(임근준), 미술·디자인 역사/이론 연구자
_ 김혜련의 선
2014년 이래 작가 김혜련은, 빗살무늬토기나 고인돌의 암각화 등 다종다양한 유물을 고찰하며, 스케치 작업과 탁본 작업 등을 진행해왔다. 그러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작가는 먹-드로잉 회화 연작을 전개했는데, 그 성과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가, 2018년 10-11월의 전시 ≪예술과 암호 - 빗살무늬≫(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휴게공간)였다. 100장의 드로잉으로 구성된 신작 ≪나의 신석기(My Neolithic)≫(2018)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암사동 바리≫(1971-1975년 발굴, 신수 22711)와 함께 전시됐는데, 놀랍게도 김혜련의 현대적 선묘는, 신석기인의 원시적 빗금들—모종의 뼈를 지닌 선들을 특징으로 하는—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
당시 전시 브로슈어에 실린 작가의 글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간명하게 추구하는 가치를 함축하고 있었다.
“한국 신석기 토기문양에서 저는 특별히 선에 대한 조형적 감수성을 발견합니다. 형태의 즉흥적 결정력, 흙이라는 물성에 대한 집중력, 선 긋기의 즐거움, 율동과 호흡이 드러나는 선들, 그 다양한 길이와 서로의 간격, 여기에 전체적 구성에서 채움과 비움이 적절히 분배되어 있음에 감탄하며 그 선들을 감상하다 보면 마치 현대미술에서의 어떤 거장을 보는 듯 합니다. 일체의 사사로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경지, 물론 현재적 입장에서 보면 문명 이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심리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세계와 만나 물성으로 어떤 표현행위를 할 때 가장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지각행위와 인식작용, 여기에 미학적 감수성이 함께 작동하는 본질적인 순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김혜련은 신석기인과의 교감에서 멈추지 않았다. 원작 대신 배너로 전시된 ≪신발과 암호(Shoes and Code)≫(2018)에서 작가는, 암사동의 신석기 토기와 함북 청진의 신석기 토기뿐만 아니라, 백제 무령왕릉의 신발 문양, 고구려 안학궁의 암막새 기와, 가야의 집모양 토기, 고려 만월대의 기와, 고려 대화궁의 기와 등을 바탕으로 다중 레이어의 추상선묘회화를 제작했다. 신석기 시대와 오늘 사이의 시공을 연결하는 지점들을 탐구하며, 각 점들 사이의 선을 추적하고 재연결하는 메타-선묘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
두 번째로 김혜련의 성취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이었다. 당시 작가는 대형 연작 ≪예술과 암호—고조선≫(2020)을 발표했는데, “홀린 듯 100점을 완성했는데 그중 30점만 추려 이번 한글 특별전에 전시한다”고 밝혔다.
고대인의 정념이 깃든 선묘-문양들을 화면 위에 재소환한 문화인류학자로서의 작가는, 전국 각지의 암각화(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흥리 뒷산 속칭 ‘오줌바위’에 새겨진 윷판 암각화, 전라북도 남원시 대곡리 암각화, 전라북도 임실 가덕리 상가마을 윷판바위[넝바우] 암각화, 경상남도 함안 도항리 고인돌 암각화,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신평리 윷판대 암각화, 서울 우이동 윷판바위 암각화 등등)에서 발견되는 북두칠성 등 갖은 별자리를 중첩했다. 당시 화가는 이리 설명했다. “고흥·강화·영천 등의 고인돌에 남겨진 북두칠성 조각의 흔적을 옮겼다. 문양에 집중케 하는 시각적 장치다.”
2020년의 ≪예술과 암호-고조선≫ 연작에서 김혜련은, “미지의 퇴적층을 파내며, 잊힌 조형성을 복원”하는 단계에 서 있었다. 한데 2022년의 개인전 ≪그림을 쓰다: 훈민정음≫에서는, 복원의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훈민정음의 이상향을 조형해온 기존의 조형 질서들을 해체하고 종합함으로써, 그에 담겨 있던 핵심을 재조형해놓고야 말았다. 훈민정음의 세계를 구성하는 판각본들과 여러 서예 기록물들을 세계를 타고 흐르는 고대적 가치관/조형관을 발견해, 새로운 암호적/주술적 긋기-그림의 원시적/초현대적 훈민정음 세계를 창출해낸 터였다.
나는 예술가 김혜련을 ‘한국성 탐구를 통해 한국성의 한계를 초극하는 단계에 도달한, 의문의 여지가 없는 거장’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화가로서 그는, 하나의 확산 가능한, 수행적 실천의 원형이 됐다. 그는 고대를 가설적 기준점으로 삼아, 각 지역의 각 시대별 유물을 관문으로 삼았다. 오늘과 고대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지목된 유물들과 그의 창조적 재해석을 통해, 우리는 고대와 마주보도록 유도되고, 그 조우를 통해 세상은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도록 강제된다. 김혜련은 한반도의 전통을 통해 고대로 가는 길을 찾고, 고대의 상호연결성을 바탕으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한계를 초극하는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으니, 포스트-민족주의자이자 포스트-아시아주의자로서 미래 세대를 위한 역할-모델이 되기도 한다.
김혜련의 선묘에 깃든 고대 이래의 정념들은, 눈에 뵈는 조형 질서 이상의 뼈대로 노릇한다. 그 뼈대의 선(역사)을 좇는 선긋기의 행위와 반복을 통해, 화가는 우주적 맥놀이의 집을 짓는다. 그 집들은 고인돌이 됐다가, 부석사가 되기도 하고, 광개토대왕릉비가 됐다가, 고구려 청동기 제사장의 거울이 되기도 하고, 새발무늬토기가 됐다가, 1917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신라 고려 조선의 역대 서화가를 정리해 사전 형식으로 펴낸 책으로, 실제 간행은 1928년에 이뤄졌다. 한반도 미술사의 연구를 위한 시발점이 됐다)의 초고를 완성한 오세창이 되기도 한다.
-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2022 심플> 전 도록 서문 중에서
Lines that Embody Pathos, Lines that Lead Us to Prayer
Art and design historian/theorist
- in the catalog of exhibition <2022 SIMPLE>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Citiy
2023 artist note <Petrogryoh in Byeokryeon Village> 작가노트 <벽련마을 암각화>
2022 artist note <the black color, line drawing and materials of art> 검은 색, 선 긋기, 예술의 물성
2022 artist interview 작가인터뷰 <2022 SIMPLE>
2022 by Geunjoon Lim 임근준
2022 artist interview <Birds of Mahan>작가인터뷰<마한의 새>
2022 by Geunjoon Lim 임근준
2022 by Dongkook Lee 이동국
2022 by Dr. Seunghyun Lee 이승현
2021 by Chung-Hwan Kho 고충환
2019 artist note <Patterns-the Beginning of Art>작가노트 <문양-예술의 시작>
2018 artist note <Hwangnamdaechong>작가노트<황남대총>
2021 artist note <Paintings on Dolmen>작가노트<고인돌의 그림들>
2019 Neolithic Studies by Heryun Kim 김혜련 <신석기연구>
2019 by Dr. Gerhard Charels Rump
2018 by Dr. Britta Schmitz
2017 by Christian Kneisel
2016 by Dr. Kim Mi-jung 김미정
2014 by Dr. Kim Mi-iung 김미정
2014 by Prof. Young-Paik Chun 전영백
2014 by Odile Crespy
2011 by Prof. Kai Hong 홍가이
2009 by Prof Woohak Yun 윤우학
2008 by Katrin Dillkofer
2007 by Prof. Youngmok Chung 정영목
2005 by Dr. Gerhard Charels Rump
2001 by Dr. Gerhard Charels Rump
2001 by Dr. Friedrich Rothe
2000 by Dr. Gerhard Charles Rump
1994 by Prof. Klaus Fussmann
2020 artist note on <Gojoseon and Hangeul> 작가노트 <고조선과 한글>
2017 artist note on <Amnokgang> 작가노트 <압록강>
2015 artist note on <Lighter Than the Wind>작가노트 <바람보다 가벼운>
2014 artist note on <Golden Tears> 작가노트<황금눈물>
20014 artist note on <The Complete Vessel>작가노트<완전한 그릇>
2009 artist note on <DMZ 2009>작가노트<비무장지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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